더 러닝맨
한줄평
제작진 및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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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파월
Glen Thomas Powell Jr.
벤 리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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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 브롤린
Josh Brolin
댄 킬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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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먼 도밍고
Colman Domingo
바비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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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페이스
Lee Grinner Pace
에번 맥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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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로슨
Jayme Lawson
실라 리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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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세라
Michael Cera
엘턴 패러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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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H. 메이시
William Hall Macy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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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오브라이언
Katy O'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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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존스
Emilia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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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에즈라
Daniel E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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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자야스
David Zay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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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헤이스
Sean Patrick Ha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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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글루스먼
Karl Glusman
영화 소개
에드가 라이트가 연출하고 글렌 파월이 주연한 2025년 디스토피아 액션 스릴러.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을 새롭게 영화화한 작품으로, 1987년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 영화와는 별개로 원작의 전국적 생존 게임 설정을 다시 활용한다.
빈부 격차가 극단화된 근미래 사회에서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대중의 분노와 불안을 생중계되는 살인 게임으로 소비한다. 병든 딸의 치료비를 구해야 하는 노동자 벤 리처즈가 30일간 전문 추적자들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인기 프로그램에 뛰어든다. 시청자는 참가자의 행방을 제보하고 방송사는 생존과 죽음을 시청률로 환산한다.
빠른 편집과 추격전, 블랙 코미디를 통해 미디어 조작, 의료비 부담, 계급 갈등을 풍자한다. 조시 브롤린이 냉혹한 제작자 댄 킬리언을, 콜먼 도밍고가 쇼 진행자 바비 톰슨을 연기한다. 촬영은 정정훈이 맡았다.
시놉시스
근미래 미국. 직장을 잃은 벤 리처즈는 아픈 어린 딸을 치료할 돈이 없어 절박한 상황에 몰린다. 그는 가족을 위해 거액의 상금이 걸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가장 위험한 쇼인 《더 러닝맨》에서는 참가자가 30일 동안 도망치는 동안 전문 암살자 헌터들이 이들을 추격하고, 모든 과정이 전국에 생중계된다.
벤은 네트워크 제작자 댄 킬리언의 눈에 띄어 출연하게 된다. 방송사는 벤을 사회의 적으로 묘사하는 선전을 퍼뜨리고, 시청자들은 현상금과 보상을 노리고 그의 위치를 제보한다. 벤은 도시와 지방을 가로지르며 도망치는 과정에서 다양한 조력자와 반체제 인물들을 만나고, 게임의 규칙 자체가 권력자를 위해 설계됐음을 깨닫는다.
벤의 예상 밖 저항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프로그램은 단순한 생존 경연을 넘어 체제의 진실을 둘러싼 싸움으로 변한다. 가족을 지키려는 개인적 목표와 방송사의 거대한 통제 장치에 맞서는 선택 사이에서 벤은 생존만으로는 끝낼 수 없는 대결에 나선다.
감상평
애초에 깊이 있는 사회 풍자극을 기대하고 본 영화는 아니었다. 에드가 라이트가 만들고 글렌 파월이 주연을 맡은 《런닝맨》이라면 그냥 신나게 달리는 오락영화 한 편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크게 실망스럽지 않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빠르게 달리고, 볼거리도 충분하며, 결말 역시 오락영화다운 시원한 마무리라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쉬웠던 것은 영화가 굳이 그렇게 많은 사회문제를 끌어들였으면서도 그 어느 것도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빈부격차와 의료 문제, 노동 문제, 거대 기업의 횡포, 미디어 조작, 딥페이크, 대중의 폭력성까지 정말 많은 것을 건드린다. 문제는 말 그대로 ‘건드리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노골적으로. 영화가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는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데, 그 이상으로 생각해볼 만한 무언가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차라리 몇 가지에만 집중했다면 조금 더 날카로울 수 있었을 텐데, 이것저것 모두 집어넣다 보니 사회 풍자라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체크리스트처럼 하나씩 보여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글렌 파월의 연기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영화 자체가 과장된 세계를 그리고 있으니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간 연기가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분노하고 소리치고 이를 악무는 모습들이 때때로 너무 과하게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최근 내가 봤던 글렌 파월의 영화들에서는 비교적 선하고 호감 가는 역할로 등장했던 경우가 많아서인지, 이번처럼 계속해서 분노에 차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이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배우의 기존 이미지와 내가 최근에 봐온 역할들이 겹쳐 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분노보다 ‘글렌 파월이 화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아쉬웠던 것은 따로 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특유의 색깔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뜨거운 녀석들》, 《베이비 드라이버》 같은 영화들을 생각하면 에드가 라이트는 편집의 리듬이나 음악의 사용,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도 누가 만든 영화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기 색깔이 강한 감독이다. 특히 끊임없이 도망치고 쫓기는 《런닝맨》이라는 소재라면 그런 장기가 마음껏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되는 순간이 많다. 빠르게 진행되기는 하지만 그 빠름이 에드가 라이트 특유의 리듬으로 느껴지지는 않고, 액션 역시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감독의 이름을 가리고 봤다면 과연 이 영화를 에드가 라이트가 만들었다고 알아볼 수 있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영화의 다른 어떤 단점보다도 가장 아쉬웠다.
그래도 《런닝맨》을 오락영화로만 놓고 보면 충분히 볼 만하다. 빠른 전개와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 덕분에 러닝타임이 크게 지루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려는 태도도 분명하다. 결말 역시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이 영화에서 원했던 것도 무겁고 암울한 사회비판이 아니라 재미있는 액션 블록버스터였기 때문이다.
결국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회문제를 노골적으로 꺼내놓고도 깊게 들어가지는 못했고, 글렌 파월의 과장된 연기는 다소 부담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에드가 라이트라는 감독의 이름에서 기대했던 개성이 보이지 않았다.
잘 만든 오락영화일 수는 있어도, 내가 기대했던 에드가 라이트의 오락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와 비슷한 영화
장르, 감독, 출연진, 제작사와 개봉 시기를 종합해 비슷한 작품 5편을 추천합니다.
평단 및 관객 평점
로튼토마토 총평CRITICS CONSENSUS암울한 원작을 활기차게 질주하는 에드가 라이트의 《더 러닝맨》은 독창적인 액션 영화에 대한 감독 자신의 높은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매끄러운 속도감을 끝까지 유지한다.
평론가 및 언론 리뷰
로저 이버트CRITICS REVIEW에드가 라이트의 《더 러닝맨》은 출발부터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추격전과 편집의 박력이 워낙 강해 이야기의 허점을 따질 틈조차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속도는 작품이 그리는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까지 가로막는다. 1987년 영화보다 거칠고 잔혹해졌지만, 현대 사회의 공허함과 잔혹성에 대한 통찰까지 더 깊어진 것은 아니다.
라이트의 연출 솜씨와 조연들의 존재감은 분명 뛰어나다. 하지만 인물들은 충분히 성장할 시간을 얻지 못하고, 벤 리처즈 역시 몇 가지 감정에 갇힌 채 반복된다. 노동 착취와 의료 불평등, 미디어 선동에 대한 비판은 명확하지만 그 저항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는 설득하지 못한다. 부패한 시스템을 공격하려는 영화가 결국 그 시스템이 생산한 또 하나의 오락 상품처럼 보인다.
인디와이어CRITICS REVIEW이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통찰은 화면에 모든 것을 기록하는 사회가 정작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역설에 있다. 에드가 라이트는 스티븐 킹의 오래된 디스토피아를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 맞춰 되살리며, 대중의 분노가 어떻게 통제되고 서로를 향하도록 유도되는지를 거친 액션 속에 녹여낸다.
결말은 원작의 가장 섬뜩하고 예언적인 요소에서 한발 물러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지닌 분노의 힘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관객을 달래기보다 불편하게 만들고, 우리의 분노가 돈보다 값진 자원이며 서로를 공격하는 데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드문 할리우드 오락 영화다.
버라이어티CRITICS REVIEW1987년 아놀드 슈워제네거 영화보다 원작의 설정을 풍부하게 활용한 새 《더 러닝맨》은 충분히 즐길 만한 추격 액션을 제공한다. 글렌 파월의 벤 리처즈는 고전적인 액션 스타의 거친 에너지를 지녔고, 에드가 라이트는 살인 쇼와 미디어 권력의 결탁을 화려한 장면들로 밀어붙인다.
그러나 이야기가 반복되는 추격과 설명에 갇히면서 풍자는 점점 무거워진다. 폭력을 오락으로 만들고 대중을 통제하는 미래 사회라는 발상은 1980년대에는 충격적이었겠지만, 오늘날에는 낯설지 않다. 메시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연출 탓에 작품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의 충격은 기대만큼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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