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으로 정상에 오른 ‘노매드랜드’ 이후, 클로이 자오가 선택한 차기작은 의외였다. 테렌스 맬릭을 연상케 하는 서정적인 영화미학으로 주목받아온 그가 슈퍼히어로 장르의 공식을 따르는 마블 영화 ‘이터널스’를 연출한 것이다. 결과는 혹평과 함께 ‘마블의 흑역사’로 기록된 흥행 부진. 자오에게도 낯선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따랐다.
하지만 올해 가을, 자오는 다시 자신만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매기 오패럴의 2020년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햄넷’으로 귀환한 것. 셰익스피어와 그의 아내 아그네스의 사랑, 상실, 그리고 아들 햄넷의 죽음을 둘러싼 비극을 다룬 이 작품은 “햄릿의 탄생을 둘러싼 정서적 기원”이라는 평과 함께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다. ‘이터널스’가 남긴 상처는 말끔히 지워졌다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자오는 최근 스크린랜트 인터뷰에서 “MCU의 신화를 현대적 버전으로 바라본다”며 “이터널스를 다시 다루고 싶다. 그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속편 의지가 확고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솔직히 말하면, ‘이터널스’가 비평만큼 나쁜 영화였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물론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지만, 적어도 ‘토르: 러브 앤 썬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앤트맨과 와스프: 퀀터매니아’, ‘블랙 위도우’보다는 더 야심적이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자오 특유의 시선이 스며 있는 작품이었고, MCU의 공식에 기계적으로 순응하지 않은 점은 분명 장점이었다. 다만 그 야심이 결과적으로는 속도감을 잃은 난해함으로 이어졌고, 디즈니 입장에서는 외면하고 싶은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마블 수장 케빈 파이기는 지난해 “이터널스 2의 즉각적인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이터널스’는 로튼토마토 47%로 MCU 최악의 혹평작 중 하나이며, 주연 쿠멀 난지아니는 “트라우마를 겪어 치료를 받았다”고 밝힐 만큼 반응이 가혹했다. 2억4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이고도 전 세계 4억200만 달러 수익에 그친 성적은 마블이 감수하기 어려운 손실이었다.
최근 일부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이터널스’를 다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앙 리의 ‘헐크’가 시간이 흐르며 재평가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헐크’가 가진 예술적 강점이 ‘이터널스’에는 충분치 않다는 냉정한 비교 역시 존재한다.
자오가 아무리 열망하더라도, 마블이 다시 ‘이터널스’를 꺼내 들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발언은 한 가지 사실을 새삼 확인시킨다. 실패작이라 불리더라도, 감독에게는 여전히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 ‘이터널스’의 운명은 마블이 아닌 시간과 함께 결정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