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머스 앤더슨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개봉 초기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9월 북미에서 2,200만 달러라는 실망스러운 오프닝을 기록하며 제작비 1억5천만 달러 이상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사실상 흥행 실패로 굳어지는 듯했다. 팬데믹 이전 기준이었다면 ‘상업적 참패’로 단정되었을 성적이다. 하지만 2025년 가을은 전례 없는 침체기다. 오스카를 겨냥한 주요 작품들이 줄줄이 흥행에서 무너지고 있으며, ‘더 스매싱 머신’, ‘스프링스틴: 딜리버 미 프롬 노웨어’, ‘어 빅 볼드 뷰티풀 저니’, ‘버고니아’, ‘크리스티’, ‘다이 마이 러브’, ‘키스 오브 더 스파이더 우먼’ 등 화제작들조차 극장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오리지널 각본, R등급, 장장 세 시간에 육박하는 정치 풍자극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전 세계 2억 달러 고지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오히려 기이한 성과로 읽힌다.
흥행의 견인차는 해외 시장이다. 북미에서는 7천만 달러에 그쳤지만, 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호주 등 주요 권역에서 꾸준히 관객을 모으며 글로벌 성적을 끌어올렸다. 올해 할리우드 작품 중 2억 달러를 넘긴 영화는 열일곱 편뿐이며, 시장 침체가 극심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언제나 ‘비용’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2,500만 달러 출연료를 포함한 과도한 제작비가 수익성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달 버라이어티가 제시한 손익분기점은 3억 달러 수준이며, 극장 수익만 기준으로 워너브러더스는 약 1억 달러의 손실을 감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실패작인가? 단기적 흥행 지표만 두고 보면 그렇다. 그러나 PTA의 대작은 처음부터 전통적 의미의 ‘이익 창출 영화’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오스카 시즌을 겨냥한 명백한 전략적 제작물이자 감독의 예술적 야심을 담은 프로젝트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12개 부문의 후보 지명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은 물론 촬영·미술·편집·배우 연기상까지 고르게 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 오스카 캠페인이 추진력을 얻으면, 이후 스트리밍·VOD 플랫폼에서의 장기 매출이 늘어나며 천천히 손익을 맞출 수 있다. 완전한 수익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장기간 누적 수익으로 ‘언젠가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는 영화’라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요약하자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당장의 흥행으로는 성공적이라 부르기 어렵지만, 2025년 헐리우드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결코 단순한 실패도 아니다. 상업적 수지는 적자를 면하기 어렵지만, 예술적·비평적 성취는 오히려 올해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PTA 특유의 야심과 독창성이 빚어낸 이 대작은, 흥행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오스카 시즌에서는 분명히 중심에 서게 될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