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필요한 건 여자와 총뿐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사실 필요한 건 400마일의 도로, 의욕적인 젊은 배우들, 그리고 마크 해밀뿐일지도 모른다.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의 최신 ‘헝거게임’ 버전 같은 영화 ‘롱 워크’는 독이 발린 음울하고도 매혹적인 늦여름의 선물이다. 여기에 지난해 기묘한 고양이와 쥐의 추격극 ‘스트레인지 달링’을 연출·각본한 JT 몰너가 1979년 리처드 배크먼(스티븐 킹의 필명)의 소설을 설탕물 없이 그대로 삼켜낸 각본을 제공했다.
결국 ‘롱 워크’는 전체주의 반대 메시지를 총구만큼 노골적으로 전달한다. 킹이 이미 유명해진 자신의 이름과 분리하려고 필명으로 쓴 이 소설은 베트남전 이후의 미국, 즉 정부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공포와 시위가 가득했던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오늘날과 비교해도 최악이라 부를 만한 또 하나의 시대다.
이 세계에서 정부는 젊은이들 사이에 번지는 ‘게으름 전염병’에 대한 처방으로 롱 워크를 강제 징집처럼 만들었다. 스스로 등록하고, 시속 3마일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끝없는 행군을 살아남으면 마지막 생존자에게 상상도 못할 부와 영광이 주어진다. 세 번 경고를 받으면 사살당하지만, 한 시간 동안 속도를 유지하면 경고 하나가 지워진다. 그동안 마크 해밀은 조종사 선글라스를 낀 메이저로 등장해 확성기로 “계속 걸어, 아니면 죽는다”고 외쳐댄다.
쿠퍼 호프만의 차분한 존재감이 영화의 길잡이가 된다. 영화는 말 그대로 희망이 사라진 소년들이 걷는 이야기다. 호프만은 레이 개러티 #47을 연기한다. 영화 후반부에 가까워지면 원작에 충실한 방식으로 그가 전체주의 정부 통제와 검열 시대에 성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의 아버지(조시 해밀턴)는 불온한 정치적 메시지를 퍼뜨리고 아들에게 키르케고르와 니체를 읽히던 탓에 정권의 손에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영화 속에서 레이는 “죽음은 인간을 유일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하이데거를 인용하는 듯한 대사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는’ 규칙은 참가자들에게 점점 더 큰 갈등을 부른다. 레이는 특히 #23 피터 맥브리스(데이비드 존슨)와 유대감을 쌓는다. 존슨은 허세 넘치는 매력을 보여주다가 캐릭터가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받을 때 부드러운 면모를 드러낸다. 영화는 가장 어린 참가자가 20분 만에 잔혹하게 사살되는 장면에서 제목을 비로소 띄운다.
그리고 찰리 플러머가 연기하는 #5 게리는 다른 참가자들을 약 올리고 약점을 드러내게 만들어 탈락시키려는 인물로, 케일럽 랜드리 존스를 연상케 하는 섬뜩한 연기를 보여준다. 참가자들이 설사로 고통받는 장면이나 느림보를 향한 사격 장면은 피가 튀지만 전부 CGI로 처리되었다. 참가자들은 탈수나 극도의 피로로 발작을 일으키며 차례차례 쓰러진다.
죽음의 경주를 그린 영화들 가운데 ‘롱 워크’는 시드니 폴락의 충격적인 1969년 영화 ‘그들만이 알고 있다(They Shoot Horses, Don’t They?)’에 가장 가까운 냉소적 정서를 지닌다. 촬영감독 조 윌렘스는 황량한 먼지투성이 미학을 적용해 인물들을 클로즈업으로 담고, 카메라는 늘 그들의 앞에서 걸음을 맞춘다. 특별히 혁신적이지 않은 구도와 연출은 영화의 공기를 더욱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만든다. 이 디스토피아는 과거이면서도 바로 지금일 수 있는 현실감이 있다.
“아버지는 내 영웅이었다”라고 말하는 레이는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주디 그리어)의 슬픔까지 짊어진다. 이 대사는 쿠퍼 호프만이 말할 때 그의 실제 아버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을 떠올리게 만들며 영화에 또 하나의 감정적 층위를 부여한다. 조슈아 오드직(‘와일드후드’), 개럿 워링(비밀을 품은 스테빈스 역), 투트 뉴옷(‘스몰 액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롱 워크’를 현대판 ‘스탠 바이 미’로 만들었다.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반복적이 되고, 정치적 메시지는 결말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원작의 결말을 바꿔 ‘아메리카 더 뷰티풀’이 깔리는 가운데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블로 아웃’ 마지막 장면마저 점잖아 보이게 만들 정도로 직설적이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분노를 느끼는 관객이라면 새로울 것 없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끝까지 어둡고 비타협적으로 나아간다는 사실만은 극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이 ‘롱 워크’는 관객의 손을 잡아주지 않고, 마지막에는 자장가도 불러주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