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리뷰 –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오랜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을 때

비평가들 중에는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꿈의 프로젝트’를 실제로 실현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그 이유는, 현실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꿈속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관객에게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그 통념을 완벽하게 뒤집는 경이로운 승리이자, 숨 막히는 반박문이다. 이 작가 겸 감독은 우리가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완전히 새롭게, 그리고 분명히 낯설고도 풍요로운 작품으로 다시 빚어냈다.

21세기의 영화는 19세기의 원작에 밀착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정확히 같지는 않다. 메리 셸리의 소설은 1818년에 완성되었지만, 영화의 배경은 저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인 1857년이다. 이야기를 빅토리아 시대 한가운데에 둠으로써, 현대 관객에게 더 친숙한 시대적 장치 속에 뿌리내리게 된다. 동시에,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오스카 아이작)이 전기를 활용해 자신의 피조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 훨씬 설득력 있게 표현된다.

그러나 델 토로의 각색은 철저히 원작에 영감을 받았다. 영화는 소설의 결말 근처, 북극에서 시작한다. 창조자와 피조물이 사냥꾼과 사냥감의 위치를 바꿔가며 서로를 쫓는 장면이다. 그러나 델 토로는 그 이야기를 확장해, 영화가 단지 공포 장르의 전통에 충실한 충격적이고 무서운 작품일 뿐 아니라, 가슴 아프게 인간적인 비극으로 승화되도록 만든다. 제임스 웨일이 1930년대의 고전 ‘프랑켄슈타인’과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서 구현했던 인간성을 훨씬 확장시켜 놓았다.

공포 영화 애호가들은 웨일의 영화에서 비롯된 시각적 단서들과, 해머 스튜디오의 ‘프랑켄슈타인’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델 토로는 그 전통에 대한 경의를 과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영화는 ‘깜빡이며’ 관객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진심으로 믿음을 두고, 그 철학적·영적 함의의 끝까지 파고든다.

인간이라는 ‘신’에게 물리적으로 학대받고,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받는 제이콥 엘로디의 피조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참함에 빠진다. 하지만 그가 단순한 의식이 아닌 ‘지성’을, 더 나아가 ‘문해력’을 얻게 되었을 때, 그의 고통은 비로소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몬스터로 단죄한다. 그건 단순히 괴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원한 이방인 —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모두에게 오해받고 혐오당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엘로디는 괴물의 지성과 감수성, 그리고 본래의 온순함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생쥐를 안고 쓰다듬는 장면은 조용히 마음을 무너뜨린다. 동시에 그는 분노와 힘을 똑같이 훌륭하게 전달한다.

오스카 아이작의 빅터는 광기에 가까운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는 단지 과학적 탐구에 몰두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신념이 옳음을 동료들과 가족에게 강박적으로 설득하려 든다. ‘영원한 생명’을 논하는 데 있어, 평범한 도덕 따위는 필요 없다고 믿는다. 이것이 셸리가 자신의 소설 부제에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붙인 이유다. 빅터는 자신이 궁극적인 선을 창조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이작은 때때로 전형적인 ‘미친 과학자’의 선을 넘나들지만, 결코 희화화되지 않는다. 그의 광기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공감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옳은 거리감이다.

크리스토프 발츠는 숨겨진 동기를 지닌 멘토로 등장해, 그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연기를 보여준다. 미아 고스는 빅터의 조카와 약혼한 엘리자베스로 출연해, 자신의 장인어른이 될 수도 있는 이와 비슷한 병적인 집착을 공유하는 인물로서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델 토로의 디자인 감각은 그의 단골 협업자들 — 미술감독 타마라 데버렐, 의상 디자이너 케이트 홀리 — 의 손을 통해 구현되며, 프레임마다 놀라운 시각적 조화가 터져 나온다. 프랑켄슈타인의 몸통은 마치 서로 충돌해 융합된 지각판처럼 구성되어 있고, 엘리자베스의 드레스에는 작은 초록 섬들이 맞붙은 듯한 패턴이 새겨져 있다. 화면 곳곳에는 델 토로가 사랑하는 붉은색과 검은색이 가득하다. 빅터의 꿈속에 나타나는 붉은 날개의 천사 — 혹은 악마 — 도 그 중 하나다. 이 모든 색채가 어우러져, 빠져들 만한 악몽 같은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은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한다.

오래전 델 토로는 영화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더글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만들어버리면, 이제 더 이상 꿈꿀 수 없다. 그게 위대하든 아니든, 이미 끝난 것이다. 그게 영화감독의 비극이다.”
이제 델 토로는 안심해도 된다. 이건 비극이 아니라, 완전한 승리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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