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안’ 이후 잭 크레거의 차기작 ‘웨폰(Weapons)’은 국내 공포와 스케치 코미디가 교차하는 더 야심찬 시도로, 슬픔과 트라우마에 매몰된 최근 공포영화의 흐름을 통렬하게 비튼다.
10년 넘게 이어져온 ‘고급 공포(elevated horror)’ 개념을 둘러싼 열띤 — 때로는 지리멸렬하기까지 한 — 논쟁 이후, 지금 가장 주목받는 새로운 공포 감독이 ‘지하실 공포’에 집착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웨폰’은 ‘바바리안’만큼 지하실에 몰두한 영화는 아니지만, 교외의 절망을 배경으로 장르적 쾌감을 끌어내며, 고개를 젖히고 웃을 수 있는 동시에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기묘한 체험을 선사한다. 바닥 밑에 악몽을 파묻어 두었다가, 사람들이 그 위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 공포로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미국 동부 교외 마을 메이브룩에서 시작된다. 한 달 전 새벽 2시 17분, 저스틴 간디(줄리아 가너)가 맡은 초등학교 3학년 반의 아이들 18명 중 17명이 동시에 집을 나와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그대로 사라졌고, 단 한 명만 남았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부모들은 분노와 혼란을 저스틴에게 쏟아내며, 그녀가 뭔가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아처 그래프(조쉬 브롤린)도 집요하게 진실을 캐묻는다.
저스틴은 알코올 중독에서 재발하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진실을 찾으려는 의지는 누구보다 강하다. 그녀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년 알렉스(캐리 크리스토퍼)에게 집착하며, 아처와 평행선을 그리듯 사건을 파고든다. 이야기는 마을의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만의 주인공처럼 움직이는 다층적 구조로 펼쳐진다.
영화는 챕터 형식으로 나뉘어 인물들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무기력한 경찰관 폴(올든 에런라이크), 아이를 돌보는 교장 앤드류(베네딕트 웡), 마약에 의존하는 청년(오스틴 에이브럼스) 등. 이들이 겪는 고통과 불안은 서로 뒤얽히며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놀랍게도 영화는 점점 웃기기 시작한다. 크레거는 ‘The Whitest Kids U’Know’ 동료 트레버 무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느낀 불안과 슬픔을 토대로, 인물들의 무너지는 순간을 블랙코미디로 전환한다. 그 결과 ‘상처 입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는’ 악순환이, 웃음과 절망이 교차하는 기묘한 희극으로 완성된다.
‘웨폰’은 호러와 코미디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며, 피해자와 괴물의 구분마저 모호하게 만든다. 영화는 사회적 고통의 근원을 진단하려는 듯하다가도 스스로를 가볍게 다루며, 오히려 제어 불가능한 세상의 부조리를 그대로 수용한다. 후반부 15분은 추상적 불안과 만화적 폭력이 하나로 융합되며, 스케치 코미디와 기요시 구로사와식 공포가 절묘하게 결합된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매그놀리아’에 비유했지만, 실상은 훨씬 더 작은 규모의 ‘단순한 캐논’에 가깝다. 위기 속 인물을 보여주고, 그들이 실패하고, 기묘한 사건이 벌어지고, 다시 반복된다. 이 과정은 인물들을 진실에 가깝게 데려가지만, 동시에 그들이 겪어온 고독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 구조적으로는 ‘펀치 드렁크 러브’와도 닮았다.
‘웨폰’은 호러의 문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응축시키며, 공포와 희극, 절망과 해방을 동시에 담아낸다. “이 이야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묘한 방식으로 죽는다”라는 어린이의 내레이션은, 결국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기괴함과 비극을 비추며 마무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