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단 네 편의 장편영화만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작가주의 세계를 구축해온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드물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복원영화제 ‘일 치네마 리트로바토(Il Cinema Ritrovato)’에 참석해 자신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는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행사장은 글레이저를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로 가득 찼다.
조나단 글레이저는 데뷔작 ‘섹시 비스트’(2000)부터 ‘버스’(2004), ‘언더 더 스킨’(2013), 그리고 칸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년에 한 편꼴로 영화를 만드는 느린 행보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이번 행사에서 “이번엔 또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저는 정말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말해야만 한다는 긴박함이 느껴질 때만 작업에 들어갑니다,”라고 글레이저는 말했다. “지금 제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고 있고, 곧 그것을 영화로 옮기기 시작할 겁니다. 글쓰기를 곧 시작할 예정이에요.”
차기작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전작들처럼 이 영화 역시 개봉 직전까지 철저히 베일에 싸일 가능성이 크다. 글레이저는 언제나 마케팅보다는 표현의 순수성과 주제의 강렬함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후, 글레이저는 언론과의 자리에서 “다음 작품은 정반대의 감정일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다정해질 수 있는가, 그 다정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전작이 아우슈비츠의 공포를 건조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면, 다음 영화는 그 반대편에 있는 감정, 즉 연민과 온기에 대한 탐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글레이저의 영화는 언제나 오랜 침묵 끝에 찾아온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안다. 그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빨리 그 침묵이 깨질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