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영화제 인증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전 세계 주요 영화제 17곳이 공식적으로 ‘A급(A-list)’ 영화제로 분류됐다. 이는 2007년 이후 가장 큰 제도 개편이다. 이번 개편의 목표는 영화 산업과 작품을 지원하는 핵심 영화제들의 지형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있다.
새롭게 공개된 목록에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단편 영화제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아시아 영화 중심의 부산국제영화제, 비경쟁 영화제인 토론토국제영화제가 처음으로 ‘A급’ 영화제에 포함됐다. 이들은 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등 기존의 권위 있는 경쟁 영화제들과 함께 A급 영화제로 분류된다.
17개의 A급 영화제에는 아르헨티나의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 중국의 상하이국제영화제, 이집트의 카이로국제영화제, 인도의 고아 국제영화제(IFFI Goa), 일본의 도쿄국제영화제, 폴란드의 바르샤바 국제영화제, 체코의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에스토니아의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도 포함됐다.
A급 지위는 국제적 영향력이 가장 높은 영화제에 부여된다. FIAPF는 각 영화제의 영화 선정 과정에서 제출된 작품 수와 해외 작품 비율 등을 포함한 데이터를 분석해 평가했다. 또한 영화제 산업 활동, 전문 업계 참석자 수, 언론 유치 능력, 영화 관련 보도 확보 여부도 검토 대상이었다. 관객 데이터 역시 평가에 포함돼 상영 관객 수, 좌석 점유율, 관객 개발 전략 등이 종합적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데이터는 현재 FIAPF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한편 선댄스 영화제, 텔루라이드 영화제, BFI 런던 영화제, 에든버러 국제영화제 등 미국과 영국의 주요 영화제들은 FIAPF 인증을 받지 않았다. 인증은 자발적으로 신청해야 하며, 영화제가 자체 데이터를 FIAPF에 제공해야 한다. FIAPF는 현재 일부 미국과 영국 영화제와 협의를 진행 중이며 가까운 시일 내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개편은 20년 전 FIAPF가 공식적으로 폐지했던 ‘A급’ 분류 체계가 사실상 부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동안 영화 업계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일부 최고 수준의 영화제를 ‘A급’ 영화제로 지칭해 왔다.
또한 FIAPF 인증 영화제 목록에는 6개의 영화제가 새롭게 추가됐다. 이는 FIAPF가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영화제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새롭게 인증을 받은 영화제는 아르메니아의 예레반 골든애프리콧 영화제, 몬테네그로의 헤르체그노비 영화제, 캐나다의 페스티벌 뒤 누보 시네마와 핫 독스 다큐멘터리 영화제, 프랑스의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스페인의 다큐멘터리 영화제 푼토 데 비스타다. 이로써 FIAPF 인증 영화제는 총 29개국 49개 행사로 늘어났다.
또한 올해 안에 대표성이 낮은 지역에서 추가로 4개의 영화제가 FIAPF 인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FIAPF 회장 루이스 알베르토 스칼렐라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이번 개편은 다양하고 영향력 있으며 전문적으로 견고한 영화제 커뮤니티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이라며 “이번 인증 체계는 전 세계 영화제와 제작자, 그리고 영화 산업 전체를 연결하는 신뢰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편은 약 2년간 영화제와 영화 산업 관계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추진됐다. 인증 영화제의 품질 기준과 신뢰성을 강화하고, 영화 산업에서 영화제가 수행하는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 과정은 특히 영화제 경험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면서 촉발됐다. 많은 신인 영화인들이 영화제 생태계에 익숙하지 않아 제출료, 상영 환경, 관객 규모, 산업 프로그램 등의 문제로 부정적인 경험을 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제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영화제를 선택하면 작품과 경력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에 따라 FIAPF는 인증 제도를 개편하며 기존의 4개 등급 체계를 폐지하고 단일 통합 인증 목록을 도입했다. 또한 프로그램 방식에 구애받지 않는 접근, 영화제와 산업 간 신뢰 강화, 영화제 간 협력 확대, 그리고 영화제 활동을 보여주는 정량·정성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FIAPF는 전 세계 31개국 38개 영화 제작자 단체를 대표하는 조직이며, 국제영화제 인증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FIAPF 영화제 부문 수석 디렉터 플로랑스 지로는 “새로운 인증 체계는 영향력 중심의 미래지향적 접근을 반영한다”며 “영화제들이 개별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더욱 잘 보여주고, 영화 산업이 영화제의 가치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는 영화제 생태계를 강화하고 영화와 산업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영화제의 역할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