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타임
《프라임타임》은 미디어 풍자극이자 스릴러이며 공포영화다. 동시에 ‘악’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악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하는 개념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악한 힘인지 묻는다. 영화는 결국 후자의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싣는다. 등장인물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타락시키는 자와 타락하는 자. 이 영화에서 악은 마치 질병처럼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간다. 때로는 어둠 속에 숨어 다음 숙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2000년대 NBC의 인기 프로그램 《투 캐치 어 프레데터》를 진행했던 앵커 크리스 핸슨을 연기한다. 패틴슨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타이타닉의 구명보트에서 노파를 밀어버릴 것 같은 남자를 연기하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배우인데, 이번에는 그에게 제대로 된 비열한 캐릭터가 주어졌다. 핸슨의 프로그램은 법적 문제에 휘말리기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자경단식 함정수사의 완성형이라고 비판했다. 제작진은 속임수와 조작을 이용해 실제 또는 잠재적인 아동 성범죄자들을 특정 상황으로 유인했고, 핸슨은 카메라 앞에서 그들의 뒤틀린 생각과 의도를 보여주는 증거를 들이밀며 몰아붙였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그들을 체포했다.

영화는 핸슨과 야심차고 냉소적인 프로듀서 앤디 벤더를 함정 취재 현장에서 처음 소개한다. 이 장면을 비롯한 여러 시퀀스는 당시 방송 뉴스 카메라로 촬영했거나, 적어도 그 시절의 화면처럼 보이도록 가공한 듯하다. 첫 번째 표적은 토니 레볼로리가 연기하는 소아성애자다. 프로그램에서 미성년자를 가장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 카메라가 설치된 집으로 그를 유인한다. 그 배후에서는 자비에가 온라인에서 십대 소년과 소녀인 척하며 잠재적 성범죄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영화는 시작부터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아무리 혐오스러운 인간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프로그램이 사용하는 이런 방식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패틴슨의 연기는 이런 불편함을 더욱 키운다. 그가 연기하는 핸슨은 자신이 하는 일의 윤리적 의미를 고민해본 흔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불안감을 주는 요소는 함정 취재 현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평소에는 빛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핸슨의 눈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기대감이다. 그는 상대가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잠시 즐기듯 바라본 뒤, 대화 기록에 남아 있는 상대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읽어주기 시작한다.

프로그램이 가진 핵심적인 문제는 표적이 된 사람들이 이전에도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은 있지만 체포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중범죄로 기소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는 점이다. 결국 프로그램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유죄 판결도 받지 않은 사람의 삶을 파괴할 위험을 끊임없이 안고 있었다. 방송사 역시 민·형사상의 책임에 노출될 수 있었다. 2006년 10월 《Dateline NBC》의 한 프로듀서는 익명으로 당시 《Radar》 기자에게 프로그램의 표적 중 누군가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 기사가 나온 지 약 2주 뒤 실제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핸슨은 텍사스주 머피 경찰을 설득해 시 정부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 거물급 표적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경찰이 접근하자 그 남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작진은 그가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큰 ‘대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해 ‘고래(The Whale)’라는 암호명까지 붙여놓았다. 이런 비인간적인 표현은 영화 속 언론인들이 타인의 인간성을 얼마나 무시하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프로그램을 프라임타임으로 옮기고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ABC의 《로스트》를 끌어내리는 것뿐이다.
《프라임타임》은 《내추럴 본 킬러스》, 《네트워크》, 《군중 속의 얼굴》, 《나이트크롤러》, 《성공의 달콤한 향기》 등 미디어 윤리를 다룬 과거 영화들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나이트크롤러》와 《성공의 달콤한 향기》처럼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두운 머리의 카리스마 넘치는 야심가를 중심에 둔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영향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합해 새로운 무언가로 만들어낸다. 기괴하고 최면적이며 때로는 관객을 의도적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영화다. 현실의 사건과 이 영화의 관계는 암레트의 이야기가 《햄릿》과 맺는 관계와 비슷하다.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인 아존 싱이 실제 사건에서 생략하거나 새롭게 만들어내고 과장한 부분들은 관객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함정 취재가 가진 법적 위험을 좀 더 깊이 다뤘다면 영화 역시 더 깊어졌을 것이다. 핸슨을 상습적인 불륜남으로 묘사하는 사생활 관련 서브플롯 역시 영화의 중심 이야기와 주제적으로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의 성범죄 법정에서 판사와 배심원 역할을 동시에 하는 핸슨 역시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생활이 엉망이었다고 해서 공적인 영역에서 이뤄낸 선한 결과까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불륜을 프로그램이 다루는 끔찍한 범죄들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은 잘못된 등가성을 만들어내며,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영화 자체의 필요보다 우선시킨 드문 사례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프라임타임》은 다큐멘터리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영화가 원하는 것은 훨씬 스타일화되고, 거의 오페라에 가까운 무언가다. 잔혹한 폭풍우 속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핸슨은 비유적인 의미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무언가에 쫓기기 시작한다. 이때 영화는 완전한 네오고딕 악몽으로 변한다. 등장인물들은 도덕적 위험으로 만들어진 《환상특급》의 세계에 갇혀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대중적인 관객과 연결되는 데 방해가 될 만한 요소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소재 자체다. 한마디로 상당히 버겁다. 프로그램의 사법 체계 밖 함정망에 걸려든 남성들은 자비에가 온라인에서 신분을 속이는 방식으로 찾아낸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그는 ‘Perverted Justice’라는 자경단 조직을 만들었고, 이 단체는 TV 함정 취재에 협력하는 대가로 NBC 뉴스로부터 수십만 달러를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화 기록은 핸슨이 표적들을 몰아붙일 때 그대로 읽히며 다른 인물들도 이를 낭독한다. 함정 취재 도중 한 표적이 카메라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주류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남성 전면 노출이지만, 적어도 티켓 판매에 도움이 될 종류의 장면은 아니다.
두 번째 장벽은 영화의 스타일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으로 이번 작품을 통해 극영화 장편에 데뷔한 랜스 오펜하임은 소재 자체가 만들어내는 혐오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강렬한 표현주의적 연출을 선택한다. 영화 대부분은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됐지만 색은 열에 손상된 VHS 테이프처럼 번지고 뭉개진다. 마치 영화 자체가 독에 중독되어 썩어가고 있는 물체처럼 보인다. 핸슨의 대사를 빌리자면 시간의 바깥, 공간 너머에 존재하는 것 같은 영화다.

이 불쾌함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강력한 배우들의 연기다. 패틴슨은 핸슨을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한 외계 생명체처럼, 혹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타락시키기 위해 TV 업계에 취직한 하급 악마처럼 연기한다. 그의 비인간적인 모습은 처음에는 불편하고, 이후에는 무서워지며, 마지막에는 끔찍할 정도로 우스워진다. 이 남자는 애초에 무언가가 잘못 연결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매튜 마허는 악인을 찾아내 처벌하려는 자비에의 강박적인 열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런 충동은 너무나 쉽게 혼란스럽고 오만한 가학성으로 변질될 수 있다. 메릿 위버가 연기하는 앤디 벤더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 척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순간에도 결국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더 큰 성공을 가져다줄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위버는 TV 뉴스 제작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짜 진정성과 교묘하게 숨겨진 냉혹함을 훌륭하게 표현한다. 제시카 헥트 역시 《투 캐치 어 프레데터》에서 명백하게 영감을 받은 프로그램을 맡아달라며 벤더를 영입하려는 ABC 뉴스 프로듀서 역할로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두 인물 모두 겉으로만 공감하고 진실한 척하면서 상대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다정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인간형을 압축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숨겨진 엔진은 스카일러 지손도가 연기하는 무명 23세 배우 댄 플럼이다. 그는 벤더와 핸슨의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조차 모른다. 카메라 앞에서 미성년자를 연기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점차 불안감을 잃어가고, 그와 함께 자신의 도덕적 나침반마저 잃어버린다.
핸슨이 플럼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무심한 목소리로 “자네를 보면 내 아들이 생각나”라고 말하자 플럼의 발걸음에 갑자기 활기가 생긴다. 그 순간은 가슴이 아프다. 영화에는 플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들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벤더와 핸슨에게 인정받고 연기료를 받고 평생의 목표였던 미국배우조합에 가입하기 위해 그 안에 남아 있던 선량함의 불빛이 하나씩 꺼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배우조합 카드를 얻는 대신 자신의 영혼을 잃는다면, 인간에게 과연 무엇이 남는가?
《프라임타임》이 관객의 피부 아래로 파고들어 오랫동안 머무는 영화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질문들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