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리뷰: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거대한 도전,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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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리뷰: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거대한 도전,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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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는 '서사시(epic)'라는 단어 자체를 정의하는 작품이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에피코스(epikos)*에서 유래했으며, 긴 이야기와 예언, 격언, 영웅 서사를 뜻하는 형용사였다. 이 모든 의미는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가 남긴 그리스 신화의 걸작 《오디세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결국 이 작품은 그저 집으로 돌아가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청동기 시대의 《플레인스, 트레인스 앤드 오토모빌스》라고 할 수 있다. 1만 2천 행, 24권으로 이루어진 3천 년 된 이 서사시는 수많은 세월 동안 바다와 섬을 건너고, 전쟁터를 지나며, 마침내 저승에까지 이르는 신과 괴물들의 장대한 여정을 그려낸다.

그만큼 엄청난 도전이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야심찬 프로젝트는 낯선 일이 아니다. 그의 첫 대표작 《메멘토》는 시간을 거꾸로도, 앞으로도 전개했고, 이후에는 전쟁, 슈퍼히어로, 꿈, 웜홀, 핵전쟁, 빅토리아 시대의 순간이동 장치까지 다뤘다. 하지만 《오디세이》야말로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야심찬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오프닝 자막이 말하듯 '마법이 실제로 존재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신들의 판타지와 현실적인 세계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시작부터 방대한 설정과 사건들이 쉼 없이 쏟아진다. 때로는 설명을 위해 '엑스포지셔너스'라는 인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오늘날의 감독 가운데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규모를 실제로 구현해낸 영화다.

그럼에도 놀란은 이 방대한 원작을 가능한 한 우아하고 효율적으로 압축해냈다. 고전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내용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다.

물론 원작 팬들 가운데는 중요한 일부 에피소드가 삭제된 점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가 바람주머니를 실수로 열어버리는 장면이나 경기 대회에 참가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대사 역시 원작 특유의 운율과 시적인 아름다움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육각운율(dactylic hexameter) 같은 고전적 리듬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원작에 대한 충실함을 조금 내려놓은 대신 영화는 영상과 구조 자체를 하나의 시처럼 만들어낸다. 편집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놀란은 호메로스의 회상 구조를 적극 활용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겹쳐 쌓아간다. 때로는 맷 데이먼의 수염에 늘어난 흰빛만이 지금 여정의 어느 시점인지 알려줄 뿐이다.

영화는 수없이 많은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오히려 여러 번 다시 봐야 비로소 모든 디테일이 보이는 작품이다.

세계를 간결하게 소개한 뒤 오디세우스(맷 데이먼)와 그의 불운한 동료들은 외눈박이 키클롭스, 슬프고도 매혹적인 세이렌, 그리고 거대한 라이스트리곤 족과 차례로 맞닥뜨린다. 특히 라이스트리곤 장면에는 《오멘》 이후 가장 충격적인 아역 연기가 등장한다.

놀란은 실사 특수효과를 선호하는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여기서 더욱 인상적인 것은 다양한 기술의 완벽한 융합이다. 루드비그 예란손의 실험적인 음악 위에서 퍼펫, 스턴트, 특수효과, 그리고 CGI가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신화 속 세계를 현실처럼 만들어낸다.

이 영화의 규모는 솔직히 입이 벌어질 정도다. 오늘날 그 어떤 감독도 쉽게 상상하거나 요구하거나 실제로 구현하기 어려운 수준의 영화 제작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오히려 조용한 순간들이다.

신들은 거대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크기로 그려진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분노는 자연현상을 통해서만 느껴지고, 칼립소(샤를리즈 테론)는 그저 함께 있어줄 누군가를 원한다. 아테나(젠데이아)는 《듄》에서 맡았던 역할을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꿈과 환영 사이에서 잠시씩 모습을 드러낸다. 혹은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반면 서맨사 모턴이 연기한 키르케는 놀란 영화 가운데 가장 호러에 가까운 순간을 선사한다. 인간의 저열함을 향한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이 시퀀스는 충격적일 만큼 강렬하다.

놀란은 이번에도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향해 분노를 터뜨린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의 영웅들 역시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결점과 약점으로 가득하다.

놀란의 단골 배우가 된 맷 데이먼은 오디세우스를 훌륭하게 연기한다. 그는 영웅이라기보다 지도자의 무게에 짓눌린 지친 군인이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만큼 거대한 선택의 딜레마를 짊어진 인물이다.

놀란은 그의 불완전함을 강조한다. 여러 차례 오디세우스는 영웅답게 싸우기보다 《몬티 파이튼과 성배》의 아서 왕처럼 "도망쳐!"를 외치며 배까지 전력질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영화는 마지막 막에 이르러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이타카로 돌아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와 재회하고, 안티노우스(로버트 패틴슨)가 이끄는 구혼자들과 맞선다.

영화 속 그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으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쇠락해가는 제국이기도 하다. 세계를 통제하고 식민화하는 그 모습은 미국의 예외주의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연상시키며, 배우들의 억양 선택 역시 이러한 해석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이타카를 다시 위대하게(Make Ithaca Great Again)?'

여정의 끝에서 오디세우스는 세상이 이렇게 무너져버린 현실과, 그 과정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 앞에서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콜로널 블림프》를 떠올리게 하는 정서가 스며 있다. 명예가 사라진 시대를 애도하는 군인의 모습이다.

동시에 놀란 자신의 작품들과도 맞닿는다.

《덩케르크》처럼 전쟁의 부조리와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오펜하이머》처럼 위대하면서도 위험한 한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을 응시한다.

배경은 신화 속 세계지만, 놀란이 분노하는 대상은 결국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그것을 그는 거대한 IMAX 화면 위에 압도적인 스케일로 펼쳐놓는다.

이만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은, 지금도 여전히 놀란뿐이다.

Source
엠파이어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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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0 영화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