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레드포드가 세상을 떠났다. 89세.
레드포드는 9월 16일(현지시간) 유타주 선댄스에 위치한 자택에서 가족 곁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대변인 신디 버거는 USA 투데이에 “그가 사랑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평온히 떠났다”며 “가족은 조용한 시간을 원한다”고 전했다.
60년을 빛낸 배우 인생
찰스 로버트 레드포드 주니어로 태어난 그는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에서 자라며 미술과 스포츠에 몰두했다. 콜로라도 대학에서 야구 선수로 입학했지만 과도한 파티로 퇴학당한 뒤 유럽을 여행했고, 뉴욕에서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미국연극아카데미에서 연기를 배웠다. 1959년 브로드웨이 연극 ‘톨 스토리’로 데뷔했고 ‘베어풋 인 더 파크'(1963)로 연극 무대에서 주목받았다.
1960년대 초반 ‘페리 메이슨’, ‘앨프레드 히치콕 프레젠츠’, ‘트와일라잇 존’ 등 TV 드라마에 출연했고, 1965년 나탈리 우드와 함께한 영화 ‘인사이드 데이지 클로버’에서 양성애자 스타 역으로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오르며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선댄스 키드’에서 오스카 감독까지
레드포드의 스타덤은 1969년 폴 뉴먼과 함께한 서부극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에서 절정에 달했다. 두 사람은 1973년 ‘스팅’으로 다시 호흡을 맞췄고, 레드포드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멜로드라마 ‘추억'(The Way We Were)에 출연했고, 1976년 더스틴 호프먼과 함께한 ‘올 더 프레지던츠 멘’에서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추적하는 기자 밥 우드워드를 연기했다.
1980년대 그는 감독으로서도 명성을 쌓았다. 데뷔작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 1980)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었으며, 같은 해 설립한 선댄스 인스티튜트와 이후 탄생한 선댄스 영화제는 퀜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대런 애로노프스키, 폴 토머스 앤더슨 등 수많은 감독들에게 첫 기회를 제공했다.
70~90년대의 아이콘
1970년대 ‘제레미아 존슨’, ‘위대한 개츠비’, ‘삼일의 콘도르’ 등으로 스크린을 지배했고, 1980년대에는 야구 영화 ‘내추럴’과 메릴 스트립과의 로맨스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흥행과 비평 모두를 잡았다. 1990년대에는 감독으로서 브래드 피트(‘흐르는 강물처럼’), 스칼렛 요한슨(‘호스 위스퍼러’) 등 차세대 배우들을 발굴했다.
2013년 ‘올 이즈 로스트’로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오르며 노년에도 변함없는 연기력을 과시했고, 2014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와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마블 세계관의 권력자 알렉산더 피어스를 연기하며 새로운 세대 관객들과도 만났다.
사회적 목소리와 유산
레드포드는 환경 보호 운동, 특히 키스톤 송유관 반대 캠페인에 적극 참여했고, 부시·트럼프 행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18년에는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사회적 신념은 영화계에도 깊이 스며 있었다. “독립영화는 할리우드에 맞서려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시도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