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 인물들과, 혐오스럽지만 동시에 두려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과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끝없는 기적의 매체다. ‘가여운 것들’, ‘더 페이버릿’, ‘Kinds of Kindness’를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런 폭력적 아웃사이더 영화의 대가로 자리 잡았다. 이를 ‘계몽된 인간혐오’라 부를 수 있을 텐데, 그는 스탠리 큐브릭이나 ‘네추럴 본 킬러즈’의 올리버 스톤 같은 전통을 잇되, 자신만의 어두운 장난기를 덧입힌다. 그의 신작 ‘부고니아’는 두 인물 간의 전술적이고 철학적이며 잔혹한 결투 형식을 취하면서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두 사람은 마치 ‘누가 더 기괴하고 반사회적인 범죄자인가’라는 대결에 갇힌 듯하다.
CEO 미셸 풀러
이야기는 미셸 풀러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오소리스 제약회사의 CEO로, 태평양 북서부의 한 녹지에 자리한 유리·강철 빌딩에서 근무한다. 타임과 포춘 표지를 장식한 새로운 기업 세계의 스타로, 엠마 스톤이 차갑고 날카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녀는 21세기 기업인답게 끊임없이 ‘투명성’을 포장하지만, 모든 말은 오히려 진실을 흐린다. 다양성 홍보 영상을 찍으며 ‘다양성’이란 단어가 너무 반복된다고 짜증내거나, ‘5시 30분 이후에 퇴근해도 좋다, 하지만 남아 일하는 게 더 낫다’는 식의 정책을 내놓는 장면은 그 이중성을 잘 드러낸다.
엠마 스톤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바로 그 특성이 아이러니하게도 냉혹한 CEO 연기를 빛나게 한다. 그녀가 구현하는 ‘우린 신경 쓰는 기업’이라는 가식적 슬로건은 오히려 옛날식 ‘우린 돈만 본다’보다 더 기만적이다. 미셸은 초고가 하이힐, 무술 훈련, 호화 저택으로 무장한 ‘사회병자 CEO’의 전형이다. 관객은 그녀의 회사가 뭔가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음을 직감하며, 그 직감은 곧 사실로 드러난다.
양봉업자 테디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양봉업자 테디다.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하는 그는 초라한 농장에서 사촌 도니와 함께 산다. 오프닝 보이스오버에서 그는 꿀벌과 꽃가루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하다가, 꿀벌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에 대한 언급으로 방향을 튼다. 이는 오소리스가 제조한 농약과 연결된다. 하지만 진짜 분노의 뿌리는 개인적이다. 그의 어머니(앨리샤 실버스톤 분)는 오소리스의 부실 신약을 복용한 뒤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
플레먼스는 몸을 훨씬 말린 채, 기름진 장발과 수척한 얼굴로 등장한다. 그는 진실을 향한 집착 외에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 인물로, 극도의 음모론에 사로잡힌 반(反)자본주의적 에코-테러리스트다. 테디는 미셸을 외계인이라 믿으며 납치한다. 그녀의 머리를 밀어버린 뒤, 모발을 통해 외계와 소통한다고 주장하며 ‘외계 황제’와 대화하게 만들려 한다.
철학적 결투극
‘부고니아’는 초반엔 냉혈한 CEO와 광기에 사로잡힌 급진주의자라는, 양쪽 다 혐오스러운 인물을 마주한 듯 차갑게 시작한다. 그러나 윌 트레이시(‘더 메뉴’ 공동 각본, ‘석세션’ 참여)의 각본은 점차 이들의 사고방식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대학은 특권 세탁소’라거나 ‘활동가 자체가 문제’라는 대사처럼 오늘날의 이데올로기 전쟁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영화는 두 캐릭터의 자기합리화를 관객이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머리를 밀린 채 포로가 된 미셸은 서서히 테디와 대화를 나누며, 동시에 그를 조종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냉혹함에도 불구하고, 고문 장면이 이어지면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동정심이 생긴다. 관객은 미셸이 탈출하길 바라지만, 플레먼스의 연기가 드러내는 테디의 자기파괴적 헌신 또한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는 한 세대 전체의 비극을 압축한 인물처럼 보인다.
결말과 여운
영화는 자살, 부동액 독살, 어린 시절 학대 등 충격적인 사건을 거쳐, 테디의 ‘계획’이 실패로 끝날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테디의 광기와 미셸의 냉혹함을 새롭게 비추며 관객을 웃음과 충격 사이에 놓는다. 그리고 끝내 영화는 우주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차원으로 확장된다. 두 인물이 싸워온 세계가 얼마나 취약하고 동시에 숭고한지, 그 사실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