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폴》리뷰: 죽음에서 탄생하는 삶, 익숙한 생존 스릴러를 새롭게 되살리다
로저 이버트 로저 이버트

《웨일폴》리뷰: 죽음에서 탄생하는 삶, 익숙한 생존 스릴러를 새롭게 되살리다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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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Whalefall
감독 브라이언 더필드
출연 조쉬 브롤린, 엘리자베스 슈, 오스틴 에이브럼스
장르 어드벤처, 스릴러
개봉일 2026년 10월 16일

생존 스릴러와 괴수 영화의 결합은 아직 죽지 않았다. 하지만 브라이언 더필드 감독은 《웨일폴》에 혹독하면서도 매혹적인 즐거움을 불어넣으며, 마치 이 장르를 완전히 부활시킨 듯한 인상을 남긴다. 제목인 ‘웨일폴(Whalefall)’이 단순히 고래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거나 잠수하는 모습을 의미한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영화에는 고래가 바다 깊숙이 내려가는 장면들이 공포스럽고도 황홀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더필드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거칠고 무뚝뚝한 미트 가디너(조시 브롤린)는 이 제목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설명한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하지만 뛰어난 잠수부인 미트는 영화 내내 아들 제이(오스틴 에이브럼스)에게 정서적,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가한다. 그러던 그가 제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고래가 죽어 그 사체가 해저에 가라앉으면, 그 죽음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수많은 심해 생물에게 영양분과 생존의 터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더필드 감독과 제작진 역시 익숙한 소재의 뼈대 위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동명 소설의 작가 대니얼 크라우스와 공동 집필한 《웨일폴》은 점점 고조되는 폐쇄공포적 스펙터클로 가득하다. 영화는 형식과 구조를 과감하게 변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관객을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영화적 심연으로 끌고 내려가는 현기증 나는 여정을 선사한다.

《웨일폴》이 스릴과 진지한 드라마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은 더필드와 크라우스가 등장인물들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동기를 결코 조롱거리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트는 몸에 무거운 추를 매달고 배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제이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바닷속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적어도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 어머니 자라(엘리자베스 슈)와 자매인 에바(제인 레비), 낸(에밀리 러드)에게 가져다주려는 것이다.

무모한 행동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동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제이가 장갑마저 두고 온 채 잠수 장비를 착용하고 몬터레이만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순간, 그의 여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실존적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더필드와 크라우스는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결코 직선적이지 않으며, 때로는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마음속 고통의 소음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이 자신을 완전히 잊게 만들 만큼 극단적인 행동에 뛰어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위험한 행동은 오히려 위안이 될 수 있다. 적어도 그것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제이는 끝내 화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망령을 달래려 한다. 한때 자신에게 상처를 남겼던 아버지의 집념이 이제는 아들 자신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잔혹하고도 우주적인 아이러니 속에서, 평화를 찾으려던 제이의 여정은 말 그대로 거대한 짐승의 턱 안으로 그를 밀어 넣는다. 아버지의 두개골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한 직후, 제이는 대왕오징어를 잡아먹으려던 향유고래의 공격에 휘말려 그대로 삼켜지고 만다.

 

고래의 뱃속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 램지 에이버리의 역량이 빛을 발한다. 단 하나의 제한된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면서 고래의 내부를 끈적한 점액과 피로 가득한 거대한 동굴처럼 구현한다. 마치 현실과 분리된 또 하나의 차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촬영감독 애런 모턴은 제이를 둘러싼 환경 자체가 그를 공격하는 것처럼 화면을 구성한다. 고래의 혀는 기어올라야 하는 살아 있는 거대한 바위처럼 느껴지고, 고래와 오징어의 사투는 지구상의 생물들이 벌이는 싸움이라기보다 외계 괴수들의 대결처럼 묘사된다.

이러한 수중 전투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들이다. 특히 후반부 고래가 심해에서 범고래들과 벌이는 사투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밀레니엄 팔콘이 타이 파이터들과 공중전을 벌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탁월한 음향 작업이 더해지면서 모든 장면은 현실을 초월한 경험처럼 다가온다.

오스틴 에이브럼스는 대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거친 숨소리와 절박한 몸짓만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흥미롭게도 올해 그가 중요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도중 촉수를 가진 괴물과 맞서 싸우는 영화는 이번이 두 번째다.
더필드 감독은 주인공에게 쉴 새 없이 시련을 안겨주면서, 잠깐의 안도감조차 거대한 승리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제이의 손에 오징어의 부리가 박혀 있고, 그것을 뽑아내다가 기절하는 장면에서는 손 전체를 잃는 대신 심각한 출혈만 겪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하게 될 정도다.

 

물론 영화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래의 뱃속에서 탈출하려는 제이의 현재 상황과, 그가 아버지에게 배웠던 교훈을 보여주는 과거 장면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편집은 때때로 이야기의 추진력을 떨어뜨린다. 후반부에 이르면 영화는 더욱 과감한 시도를 감행한다. 제이가 고래의 몸속에서 울려 퍼지는 낮고 거친 진동을 통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웨일폴》이 제이의 무너져가는 정신 상태 속으로 관객을 완전히 몰입시키기 때문이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간절한 바람인지, 무엇이 상상이고 무엇이 기억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위산이든 끈질기게 달라붙는 두족류 생물이든, 새로운 장애물이 등장할 때마다 제이의 삶은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기보다 그에게 토해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산산조각 난 기억, 왜곡된 과거의 이야기, 실제로 나누지 못했지만 나누고 싶었던 대화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덩어리를 형성한다. 이러한 기억들은 제이를 옭아매는 동시에, 고래의 뱃속 바깥에는 여전히 그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웨일폴》이 겉보기보다 훨씬 풍부한 작품인 이유는 제이가 고래에게서 탈출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자신이 삼켜진 경험으로부터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선교사 가정에서 성장한 더필드 감독의 전작 《아무도 널 지켜주지 않아》에는 상당한 신학적 무게감이 담겨 있었다. 그 영화는 가택 침입 스릴러와 외계인 납치라는 장르를 결합해 종교 집단, 포교, 구원에 관한 심오한 성찰을 펼쳐 보였다. 참고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작품을 가톨릭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긴 글을 남기기도 했다.

《웨일폴》에도 이와 유사한 영적 감수성이 흐른다. 성경 속 요나의 이야기와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더필드가 고래의 뱃속을 일종의 연옥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죽음과 최후의 심판 사이에는 하나의 시간이 존재한다. 삼켜지는 순간과 완전히 소화되는 순간 사이에도 기다림의 시간이 존재한다. 더필드는 제이의 처지를 통해 바로 그 중간 상태를 탁월하게 포착한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삶의 의미를 명확히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실제 변화로 옮길 기회를 얻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우리 각자가 머무는 연옥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웨일폴》을 그토록 흥미롭고 전복적인 블록버스터로 만든다. 영화의 압도적인 장면들이 관객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면, 그 안에 담긴 거칠고도 불편한 깨달음들은 다시 입을 다물고 곱씹게 만든다.

평점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