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엑스맨》의 전설 패트릭 스튜어트, 향년 86세로 별세
《스타트렉》의 장뤼크 피카드 함장과 《엑스맨》의 프로페서 X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영국 배우 패트릭 스튜어트가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0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스튜어트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 그의 공식 X 계정에 게시된 것으로 전해진 성명은 스튜어트가 알츠하이머병과 루이소체 치매로 짧은 기간 투병한 끝에 숨졌다고 밝혔다.
수십 년 동안 연극과 영화, TV를 넘나들며 활동한 스튜어트는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쌓은 깊이 있는 연기력을 대중적인 SF와 슈퍼히어로 영화에 접목한 배우였다. 특히 중년 이후 두 개의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에서 상징적인 인물을 탄생시키며 대중문화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피카드 함장에서 프로페서 X까지…두 번의 전성기를 맞은 배우
1940년 영국에서 태어난 패트릭 스튜어트는 오랜 무대 경험을 거쳐 1987년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Star Trek: The Next Generation)의 장뤼크 피카드 함장 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시 그는 이미 풍부한 연극 경력을 갖춘 배우였지만, 미국 대중에게는 상대적으로 낯선 인물이었다. 기존 《스타트렉》 시리즈의 뒤를 잇는 새로운 TV 드라마에서 중년의 영국 연극배우가 우주선 함장을 연기한다는 캐스팅은 처음부터 모두의 기대를 받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튜어트는 피카드 함장을 단순한 SF 모험물의 주인공이 아니라 지성과 원칙, 인간적인 고뇌를 지닌 지도자로 완성했다. 절제된 감정 표현과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 강렬한 존재감은 캐릭터의 상징이 됐다.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일곱 시즌 동안 방영됐으며, 스튜어트는 이후 네 편의 극장판 영화에서도 피카드 함장을 연기했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는 드라마 《스타트렉: 피카드》를 통해 다시 역할을 맡으며 캐릭터와의 오랜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두 번째 대표적인 역할은 2000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X-Men)에서 시작됐다.
당시 60세였던 스튜어트는 강력한 정신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의 지도자 찰스 자비에, 일명 프로페서 X로 등장했다. 그는 초능력을 지닌 인물에게도 인간적인 품위와 도덕적 갈등을 부여하면서 영화의 중심을 잡았다.
《엑스맨》은 현대 슈퍼히어로 영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스튜어트의 프로페서 X 역시 시리즈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이언 매켈런이 연기한 매그니토와의 대립은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인물의 관계로 깊이를 더했다.
스튜어트는 이후 여러 《엑스맨》 영화에서 찰스 자비에를 연기했다. 특히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로건》(Logan)은 그의 영화 경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로건》에서 찰스 자비에는 과거의 강력하고 지혜로운 지도자와 달리 노쇠와 혼란, 후회에 시달리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때 수많은 돌연변이를 이끌었던 인물이 자신의 능력조차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모습은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보기 드문 비극성을 보여줬다.
스튜어트는 이 작품에서 인물의 육체적 쇠약함과 정서적 불안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랜 영화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적은 없었지만, 《로건》에서의 연기는 그의 대표적인 영화 연기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또한 그는 제러미 솔니에 감독의 스릴러 《그린 룸》(Green Room)에서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악역을 연기했다. 네오나치 클럽의 운영자로 등장한 스튜어트는 차분한 목소리와 냉정한 태도만으로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배우로서의 폭넓은 역량을 보여줬다.

셰익스피어 무대에서 인정받은 연기력…대중문화의 상징으로
패트릭 스튜어트의 연기 인생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훨씬 오래전 영국 연극 무대에서 시작됐다.
그는 1966년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합류한 뒤 오랜 기간 셰익스피어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에노바버스와 《햄릿》의 클로디어스 등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영국 연극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데이비드 테넌트가 햄릿을 연기한 무대에서 클로디어스 역을 맡아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수상했으며,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도 같은 상을 받았다.
2008년 공연한 《맥베스》에서는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점차 편집증적인 폭군으로 변해가는 인물을 연기해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복잡한 심리를 표현하는 데 탁월한 배우로 인정받았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이언 매켈런과의 무대 작업도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두 배우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노 맨스 랜드》 등에서 함께 공연하며 깊은 우정과 뛰어난 연기 호흡을 보여줬다.
흥미롭게도 스튜어트와 매켈런은 《엑스맨》 시리즈에서 서로 대립하는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를 연기했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가까운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영화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스튜어트는 대중적인 작품에 출연하면서도 연극에서 익힌 연기 원칙을 유지했다. 우주선 함장이나 초능력자를 연기할 때도 캐릭터를 가볍게 취급하지 않았으며, 인물의 신념과 내면을 진지하게 표현했다.
그러한 태도는 그가 단순히 유명 프랜차이즈의 배우를 넘어 여러 세대의 관객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된 중요한 이유였다.

가정폭력 예방 활동에도 헌신…팬들에게 남긴 오랜 유산
스튜어트는 배우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폭력을 목격한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폭력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숨기기보다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활용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팬들과의 소통에서도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줬다. 작품 속에서는 엄격한 함장이나 진지한 지도자를 연기했지만, 실제 인터뷰와 행사에서는 따뜻한 성격과 재치 있는 태도로 사랑받았다.
최근까지도 그의 이름은 새로운 대형 영화 프로젝트와 함께 언급됐다.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 둠스데이》(Avengers: Doomsday)와 관련해 찰스 자비에 역으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패트릭 스튜어트는 연극배우로 출발해 TV 역사에 남을 SF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60세 이후에는 현대 슈퍼히어로 영화의 대표적인 인물로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았다.
한 배우가 두 개의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더욱이 그는 어느 작품에서든 인물의 감정과 신념을 진지하게 다루며 대중적인 장르 영화에도 깊이 있는 연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장뤼크 피카드 함장과 찰스 자비에 교수는 앞으로도 수많은 관객에게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패트릭 스튜어트의 목소리와 연기는 영화와 TV 역사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