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우드
《와일드우드》는 주류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최악의 유행에 대한 해독제와도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현실과 상상 사이의 황야 어딘가에서 길을 잃는다.
편집자 주: 이 리뷰는 2026년 10월 11일, 2026 런던영화제에서 처음 게재됐다. 패덤 엔터테인먼트는 10월 21일 수요일 이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한다.
한편으로 트래비스 나이트의 《와일드우드》는 장대하고 눈부시며, 거의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라이카를 특별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찬양한다. 오리건에 기반을 둔 이 스톱모션 스튜디오는 대부분의 회사가 애니메이션의 마법을 음미하기보다 그 마법이 깨지지 않는 선에서 얼마나 많은 지름길을 택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을 두는 영화산업 속에서 독보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와일드우드》에 투입된 놀라운 시간과 정성도 이 작품이 라이카 영화 중 가장 매혹적이지 못한 결과물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다만 그러한 결점조차 스스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법은 계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의 힘을 강조한다.

현실과 상상이 겹치는 지점을 다룬 이 방대한 판타지 모험은 지금까지 제작된 동종 작품 가운데 가장 길고 야심 차다. 미국 북서부에 사는 십 대 소녀가 까마귀 떼에게 납치된 어린 남동생을 구하기 위해 마법의 왕국으로 들어간다. 다른 업계가 관객이 더 적은 것에 만족하기를 바라는 시대에 《와일드우드》는 스톱모션이라는 형식을 새로운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모든 것을 지나치리만큼 가득 채운 광기 어린 성취다.
라이카는 서로 다른 표정 모형 14만2,000개를 3D 프린터로 제작했고, 나무 728그루를 손으로 빚었으며, 1,155일에 걸친 제작 기간 동안 715마일이 넘는 황동선을 사용했다. 제작진은 《브레이브하트》를 연상시키는 전투를 한 프레임씩 촬영했고, 영화 속 포틀랜드를 구현하기 위해 파월스 시티 오브 북스를 완벽한 미니어처로 재현했다. 그 안에는 ‘드래그퀸 동화 낭독회’ 표지판까지 들어가 있다.
주인공의 거실을 장식할 작은 디셈버리스 포스터까지 별도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아무래도 《The Crane Wife》 이후 발표된 그들의 음악을 더 좋아하는 듯하지만, 필자는 그 점을 문제 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물론 이 정도로 애정 어린 세부 묘사에는 막대한 대가가 따른다. 무시해도 좋을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라이카의 영화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제작비는 증가하고 흥행 수입은 감소했다. 그러나 스튜디오 소유주이자 나이키 공동 창업자인 필 나이트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며, 그의 아들이 회사를 운영한다는 사실도 나쁘지는 않다. 모든 할리우드의 ‘네포 베이비’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억만장자 상속자의 예술적 열정을 길게 찬양하는 대신 이렇게 말해두자. 데이비드 엘리슨이 《쿠보와 전설의 악기》처럼 예술적이고 초월적인 작품을 연출할 수 있었다면 스카이댄스 합병도 지금보다는 덜 재앙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지난해 여름 개봉한 실사판 《마스터스 오브 더 유니버스》 정도로 능숙하고 화려한 작품이라도 만들 수 있었다면 말이다.
《와일드우드》는 라이카가 국보처럼 대우받아야 하는 이유를 집약한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진심이 담겨 있으며, 미국 특유의 대담함과 어린 관객을 안전지대 밖으로 끌어내는 지브리식 의지가 결합돼 있다. 지구상의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라면 침몰하고도 남을 만큼의 손실을 감수하는 것에도 평온해 보인다.
여러 면에서 《와일드우드》는 라이카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를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동시에 라이카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겉모습만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때로는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만큼 특별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라이카의 정성만으로는 그 마법을 지키기에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작품답게, 《와일드우드》는 세상의 경이로움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또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것을 제공하는 작품답게, 우리가 더 이상 마법을 믿지 않게 된 뒤에도 그것이 삶 속에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법이 얼룩지고 불완전한 무언가로 변한 이후에도 말이다.

트래비스 나이트와 라이카의 단골 각본가 크리스 버틀러는 디셈버리스의 프런트맨 콜린 멜로이가 2011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과 카슨 엘리스의 삽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엘리스는 멜로이의 아내이며, 그녀의 앨범 아트워크는 조난자와 종이 인형, 고향을 그리워하는 군단병을 노래하던 초기 음악만큼이나 디셈버리스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원작의 삽화는 훌륭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장난기가 넘쳤던 글은 익숙한 공식에 의존했고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 그 부족함은 파도처럼 반복해서 밀려왔다.
영화 《와일드우드》의 영상은 원작보다 몇 배는 더 광대하고 섬세하다. 하지만 각본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종종 매력적이며 매우 어둡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과 《파라노만》을 만든 스튜디오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어둡다. PG-13 등급에는 첫 장면부터 분명한 이유가 있으므로 부모들은 주의해야 한다. 다만 나이가 조금 있는 어린이 대부분은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적어도 한동안은 틀림없는 라이카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다른 어떤 스튜디오도 포틀랜드를 이 정도로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 대 소녀 프루 맥킬(페이턴 엘리자베스 리)은 히피풍 네버랜드 같은 주변 환경에 이미 질린 듯하다. 아버지가 모은 식물과 세인트존스 다리 반대편의 ‘통과할 수 없는 황야’에 관한 유치한 취침 전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굴린다. 아버지가 보지 않을 때는 그가 아끼는 빨간 털모자에도 똑같이 반응할 것 같다. 맥킬 씨의 목소리는 상처받은 듯 다정한 연기를 펼치는 제이크 존슨이 맡았다.
프루는 동네 커피숍 앞을 외발자전거로 지나가며 다스 베이더 가면 아래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남자조차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이제 어린아이 같은 것들과 작별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둥근 얼굴의 괴짜이자 탁상용 판타지 게임에서 영웅 역할을 맡는 데 여전히 푹 빠져 있는 커티스 멜버그(제이콥 트렘블레이)와의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우정도 그중 하나다.
프루가 부모의 뜻을 어기고 어린 남동생 맥을 데리고 시내로 나갔을 때 말 그대로 부딪히게 되는 사람이 바로 커티스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된 까마귀 떼가 맥을 낚아채 윌라멧강 반대편 숲으로 날아가는 순간에도 커티스가 함께 있다. 그 수를 생각하면 까마귀 ‘떼’라기보다 까마귀 ‘대학살’에 가깝다.
“세상에는 인간이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맥킬 씨는 늘 그 숲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프루와 커티스는 안개 낀 철길을 자전거로 건너 숲에 도착하자마자 파시스트 성향의 말하는 코요테에게 습격당한다.
톰 웨이츠가 목소리를 맡은 이 코요테는 슬픔으로 미쳐버린 알렉산드라 전 섭정교사(캐리 멀리건)가 불확실한 전쟁에 동원한 수많은 동물 가운데 가장 충성스럽다. 알렉산드라는 통과할 수 없는 숲을 지배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파괴하려는 것인가? 그녀의 의도는 실행 계획만큼이나 파악하기 어렵다. 그 계획은 살아 움직이며 강력한 능력을 지닌 담쟁이덩굴을 장악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알렉산드라의 광기 어린 비애 덕분에 그녀가 《나니아 연대기》의 제이디스와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백설공주》의 사악한 왕비를 한꺼번에 연상시키는 인물이 됐다는 점이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향했던 특별한 사랑은 고통에 의해 변질돼 죽음을 속이거나 최소한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일반적인 집착으로 바뀌었다.
캐리 멀리건은 독이 묻은 듯한 모든 대사를 통해 알렉산드라의 상심과 광기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그러나 슬픔의 다섯 단계를 오가는 캐릭터의 투쟁은 자신의 여러 집착을 하나로 통제하는 데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판타지 서사 속에 매장돼 있다.

《와일드우드》는 라이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규모의,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풍성한 시각적 향연이다. 하지만 디자인의 탁월함과 밀도는 오히려 이야기의 평범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영화는 너무나 애정 어린 손길로 만들어졌기에 완전히 활력을 잃지는 않는다. 그러나 커티스와 프루가 헤어진 뒤부터는 현기증을 일으키는 듯한 불편함이 시작된다. 커티스는 알렉산드라의 군대에서 강제로 싸우게 되고, 프루는 도움을 요청한 인간 관료들에게 감금된다. 각각의 프레임에는 독창적인 천재성이 스며 있지만,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서 일어나야 할 연금술에서는 그런 천재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개별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그중에서도 프루가 관료들의 저택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단연 돋보인다. 하지만 통과할 수 없는 숲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안의 새로운 생명체를 만날수록, 영화 속 세계는 라이카가 쏟아부은 집요한 정성에 점점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화려하고 연극적인 올빼미 렉스 역의 리처드 E. 그랜트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는 곧바로 《셀러브리티 트레이터스》의 전설이 될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역할이 알렉산드라의 과거를 설명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에는 배신감을 느꼈다.
브렌던이라는 산적왕 역으로 마허샬라 알리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즐거웠지만, 알렉산드라와의 싸움에서 그 캐릭터가 전형적인 유형으로 축소되는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다른 부분에서 《와일드우드》는 찰리 데이와 아콰피나라는 익숙한 성우들을 그들이 출연했던 수많은 애니메이션보다 조금 더 뜻밖의 방식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라이카 역사상 가장 야심 찬 작품이 동시에 《슈퍼 마리오 갤럭시 무비》와 《앵그리 버드 2》의 방식을 빌려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어린아이의 감성과 보다 성숙한 고민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주인공과 제작사 모두 고군분투하는 영화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메타적인 요소 외에는 프루의 자아 발견 여정에 뚜렷한 형태를 부여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 마법에 걸린 나무와 친절한 쥐, 무시무시한 전사들이 줄지어 등장하면서 그 여정은 지루함 속에 희석된다.
세상의 모든 얼굴을 3D 프린터로 만들어도 이 캐릭터들이 2차원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멜로이의 소설을 131분짜리 이야기로 옮기기 위해 애쓴 결과, 나이트와 제작진은 여러 타협을 해야 했다. 《와일드우드》는 오직 넘쳐나는 경이로움 덕분에 그 타협을 견뎌낸다.
공동 주인공으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커티스는 그러한 타협의 가장 명백한 희생자다. 프루의 저돌적이고 조숙한 성격에 균형을 맞추는 인물로서는 이해되지만, 그에게는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조금 더 성숙한 영화였다면, 혹은 평생에 걸쳐 무언가를 붙잡는 것과 놓아주는 것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삶을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면, 중반부의 폭로를 계기로 프루의 어머니(마야 어스킨)와 아버지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냈을 것이다. 그 폭로는 마법적 사고방식과 부모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폭탄 같은 반전조차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다. 영화 자체가 맥킬 가족처럼 상상과 현실 사이의 절충점을 찾느라 고생하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를 존중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어느 쪽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물질적이면서도 환영이라는 마법에 의존하는 라이카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갈등을 예술로 변환하기에 이상적인 매체다. 어쩌면 그래서 웨타 FX와 협업하며 컴퓨터 기술에 새롭게 의존하게 된 모습이 프루가 겪는 위기의 해결책이라기보다 그 위기를 드러내는 증상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전체 2,804개 숏 가운데 670개가 컴퓨터그래픽으로 보강됐고, 상당수는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에 띈다. 시각효과가 조악하게 드러나기 때문은 아니다. 대부분은 라이카 특유의 시각적 스타일 안에 매끄럽게 녹아들었다. 문제는 인간의 손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는 데 있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환경과 대포의 폭발, 행진하는 코요테 군단과 거대하게 솟구치는 야생 담쟁이덩굴의 벽은 모두 인간의 손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그 결과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조차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둘러싼 이질감 때문에 어느 정도 힘을 잃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부만 그렇다. 용기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으며, 성장한다고 해서 어린 시절의 경이로움을 모두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부한 이야기와 몇몇 디지털 장식이 있다고 해서 《와일드우드》가 음미할 가치가 있는 보기 드문 장관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라이카가 길을 잃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실제로 영화는 이런 결점을 의도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관객이 그 결점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름다움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한 늙고 현명한 인물이 프루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세상에 마법이 없다는 것만 보려고 애쓰느라 풀잎 하나와 피어나는 꽃봉오리 하나하나에 담긴 마법을 전부 놓치고 있어.”
라이카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디를 바라보든 그 마법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심지어, 혹은 특히 《와일드우드》와 같은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