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호스 나인’ 리뷰: 죄와 후회, 죽음과 구원을 품은 마틴 맥도나의 블랙코미디
로저 이버트 로저 이버트

‘와일드 호스 나인’ 리뷰: 죄와 후회, 죽음과 구원을 품은 마틴 맥도나의 블랙코미디

와일드 호스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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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호스 나인

Wild Horse Nine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존 말코비치, 샘 록웰, 스티브 부세미, 마리아나 디 지롤라모, 아일린 살라스, 톰 웨이츠, 파커 포지
장르 블랙 코미디, 정치, 스릴러, 드라마
개봉일 2026년 11월 6일

마틴 맥도나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Wild Horse Nine》 역시 남자들의 우정에 관한 영화다.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다만 영화의 두 주인공 찰리(존 말코비치)와 리(샘 록웰)가 듣는 데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영화의 배경은 지금보다도 덜 개방적이었던 1973년이다. 찰리와 리는 CIA 요원이자 노련한 킬러들로, 최근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마르크스주의 지도자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정부를 무너뜨릴 쿠데타의 기반을 마련하는 임무를 마쳤다.

물론 찰리는 최근 모르핀을 맞은 상태라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는 매일 모르핀을 투여한다. 찰리는 교육을 많이 받은 철학적인 70대 남자로,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때로는 휴대용 녹음기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모르핀을 사용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죽음을 앞두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때로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비밀과 수치심까지 끄집어내어 빛 아래 놓기도 한다. 찰리는 아직 완전히 그 단계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심판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는 있다. 그는 이제 집에서 발견한 나방을 죽이지 않고 잡아서 밖으로 ‘배웅한다’고 리에게 말한다. “비 오는 날 밖에 내놓으면 미안한 기분이 들어.”

리는 찰리의 비밀을 알고 있다. 불안에 떠는 상관 MJ(스티브 부세미)로 대표되는 CIA 역시 그 사실을 안다. 그리고 리가 찰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찰리가 그토록 집착해온 ‘거대한 석상’을 직접 보기 위해 그와 함께 라파누이, 당시 미국인들이 이스터섬이라고 부르던 곳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CIA가 찰리를 보안상의 위험인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최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국가 기밀을 공개한 뒤 그들이 충격받는 모습을 즐기기 시작했고, 자신의 독백을 녹음한 자료를 모아 사후에 출간할 회고록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그리고 우리는 CIA가 보안 위험인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고 있다.

영화의 첫 부분은 쿠데타를 앞두고 리와 찰리가 주둔하고 있던 칠레에서 펼쳐진다. 이후 무대는 라파누이로 옮겨가는데, 그 전에 두 명의 젊은 칠레 대학생 모니카(마리아나 디 지롤라모)와 친구 알리시아(아일린 살라스)가 등장한다. 두 사람 역시 리와 찰리가 탄 비행기로 라파누이를 향한다. 모니카와 알리시아는 강한 좌파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아옌데에 대해 호의적으로 이야기한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둬요, 아가씨들.” 찰리가 웃으며 말한다. 이제 세 명의 보안 위험인물이 섬으로 향하고 있다.

맥도나의 작품을 한 번도 보거나 읽어본 적이 없다면 《Wild Horse Nine》의 줄거리만 듣고 1960~70년대에 흔했던 기이하고 우울한 드라마를 21세기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영화들은 주인공 중 한 명이 죽고, 아마 하모니카가 들어간 쓸쓸한 음악이 흐르면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맥도나의 필모그래피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큰 매력은 중심에 있는 두 인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실패에 대한 후회, 죄에 대한 죄책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기 자신에 관한 가장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기 싫어하는 마음 같은 어두운 감정들을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탐구한다.

그중 상당 부분은 ‘가톨릭적인 것들’이라는 항목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아일랜드에서 형제와 함께 가톨릭 학교를 다니며 성장한 맥도나는 특유의 불경스럽고 자기비하적인 유머로 이를 다룬다. 맥도나는 이전에도 청부살인업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든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많은 사람을 죽였고 영향력까지 막강한 인물들을 다룬 적은 없었다. 리가 죽인 사람은 여덟 명이다. 그중 한 명은 베트콩 암살 대상이었는데, 리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그를 죽였다. 찰리는 사람을 죽인 것보다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죽였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정작 찰리 자신이 죽인 사람은 68명인데도 말이다. 적어도 본인 주장으로는 그렇다. 찰리를 알아갈수록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시체가 그의 뒤에 쌓여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천국에 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가톨릭을 비롯한 기독교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논쟁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는 아무리 끔찍한 죄인이라도 구원의 가능성에서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찰리가 갑자기 나방조차 죽이기 싫어하게 된 것은 그가 이 문제를 꽤 오래 생각해왔음을 암시한다. “가끔은 칠레 사람들보다 칠레의 나방들이 더 걱정돼.” 그가 리에게 말한다. 영화가 관객 스스로 윤리적 조각들을 맞추도록 완전히 믿어주지 않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다. 죽음의 5단계를 정립한 스위스계 미국인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이렇게 썼다. “부정에는 은총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자연의 방식이다.”

찰리가 자신의 경력에 관한 비밀들을 털어놓을 때 이 말을 떠올릴 수도 있다. CIA 작전의 파괴력이 크고 국제 정치와 역사에 끼친 후폭풍이 심각할수록 찰리는 자신의 역할을 더욱 노골적으로 흐리거나 회피한다. 그는 1963년 11월 댈러스에 있었다고 인정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어떤 작전보다 댈러스에서 있었던 일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인다. JFK가 죽은 뒤 “세상이 엉망이 됐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찰리가 유일한 형제와 절연한 날 역시 바로 그날이었다. 형제가 자신에게 감자를 던진 뒤 두 사람은 말을 끊었다. “감자가 케네디 암살과 대체 무슨 상관인데?” 리가 따진다. 우리는 그 답을 짐작할 수 있다.

《Wild Horse Nine》에는 사실상 서스펜스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굳이 있다면 찰리가 암으로 죽을지, 리의 손에 죽을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죽을지를 궁금해하는 정도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터무니없이 긴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피할 수 없었던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히 여유롭게 움직인다. 그 과정에는 본 이야기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웃기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고, 처음에는 곁가지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중요해지는 정보를 은근히 심어놓은 장면들도 있다.

대사에는 맥도나 특유의 말을 더듬고, 찌르고, 이리저리 엮어가는 듯한 리듬이 있다. 이는 또 다른 위대한 아일랜드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베케트 역시 맥도나처럼 독실한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그는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평생 종교에 대해 고민했다. 그것이 모든 아일랜드인이 헤엄칠 수밖에 없었던 어항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베케트 역시 의미가 없어 보이는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며 서로 티격태격하는 정겨운 인물들을 다룬 암울한 코미디에 끌렸고, 그런 이야기들을 황량할 정도로 단순한 풍경 속에 배치하곤 했다.

이 영화에는 그 모든 것에 더해 존 말코비치, 샘 록웰, 스티브 부세미가 보여준 연기 가운데서도 손꼽힐 만큼 뛰어난 연기가 있다. 특히 은발의 노년으로 접어들며 장면을 훔치는 성격파 배우의 단계에 아름답게 들어서고 있는 부세미가 인상적이다. 여기에 인용하고 싶은 기막힌 대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대부분은 리의 진지함을 끊임없이 놀려대는 백발의 장난꾸러기 찰리에게서 나온다. 이렇게 풍성한 각본에서는 최고의 대사 하나를 고르기도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난 네가 철자도 못 쓰는 나라에서 사람을 죽여봤어”와 “미국 치즈를 한 번만 맛봐도 우리가 왜 베트남에서 졌는지 이해할 수 있어”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 영화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찰리와 리가 서로에게 품은 사랑, 그리고 자신들이 허무한 폭력 속에서 인생을 낭비했다는 점을 점차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신이 천국의 문을 열어주기에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그 낙원을 경험할 만큼 충분히 회개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Wild Horse Nine》은 어느새 깊숙이 파고드는 강력한 이야기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던 영화의 사색은 마침내 ‘은총을 위한 기도’의 첫 구절과도 비슷한 곳에 도착한다. “오 나의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이여. 당신의 선하심과 자비로, 내가 죽기 전에 나의 부주의와 어리석음으로 잃어버린 모든 은총을 되찾게 하소서.”

평점 3.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