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스트 하우스》는 설정만 놓고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다. 어느 날 갑자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일리(그레타 리)와 제이슨(바그네르 모우라)은 어느 날 집의 모든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창문을 깨고 나가려 해도 깨진 유리는 곧바로 원래대로 돌아온다. 마치 폭풍우가 집 주변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도 만들어놓은 것처럼 가족은 두 아이와 함께 집 안에 완전히 갇혀버린다.
창밖을 살펴보니 자신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맞은편 이웃 역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고, 두 집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팻말로 대화를 나눈다. 게다가 텅 빈 바깥에는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무언가까지 돌아다니고 있다.
출발점만큼은 훌륭하다.
영화는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건드린다. 식량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려견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가족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처음에는 집에 있던 음식을 아껴 먹다가 결국 직접 먹을 것을 재배하기 시작한다. 인터넷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집에 있던 단 두 장의 DVD를 반복해서 봐야 한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가장 깊게 파고들었어야 할 부분에서 힘이 빠진다.
이 설정의 진짜 공포는 괴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고립이 계속되고 식량이 줄어든다면 관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중반부는 바로 그런 폐쇄공포와 심리적 압박을 극대화했어야 한다.
그러나 《더 라스트 하우스》는 그 상황을 충분히 밀어붙이지 못한다. 중반부는 마지막 액션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고, 가족 사이의 갈등 역시 기대만큼 깊어지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네 사람이 실제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나 과거의 갈등, 서로에 대한 감정이 충분히 쌓여 있지 않다. 비슷한 설정의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공포와 직접 연결했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선명하다.
배우들의 활용도 아쉽다. 바그네르 모우라는 상대적으로 생생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레타 리를 포함한 가족 전체의 관계에서는 충분한 감정적 밀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관객이 보고 있는 것은 실제 가족이 극한 상황에 갇힌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이라는 가정을 실험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코로나19 당시의 봉쇄 생활을 연상시키는 설정 역시 명확하지만, 영화는 그 경험을 통해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지도 못한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공포든, 가족끼리 고립되면서 벌어지는 심리적 붕괴든 어느 한쪽이라도 제대로 밀어붙였다면 훨씬 강렬한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아이디어만 들었을 때는 머릿속에서 수많은 상황과 공포가 떠오르는데, 정작 완성된 영화는 그 상상력을 좀처럼 뛰어넘지 못한다.
《더 라스트 하우스》의 가장 큰 문제는 설정이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설정만 들었을 때 상상했던 영화가 실제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