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소개
주성치는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프로듀서로, 배우 시절 확립한 ‘모레이타우(無厘頭)’ 코미디를 영화의 연출과 편집, 액션, 시각효과까지 확장해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한 창작자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공동연출을 시작해 《식신》, 《희극지왕》을 거쳐 《소림축구》와 《쿵푸허슬》로 감독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배우 활동을 줄인 뒤에는 《서유기: 모험의 시작》, 《미인어》, 《신 희극지왕》 등에서 연출과 각본, 제작에 집중했다.
배우로 먼저 정상에 오른 주성치는 1990년대 초부터 자신이 출연하는 작품의 이야기와 코미디 구성에 점점 깊게 관여했다. 그의 감독 경력을 이해하려면 배우와 감독을 완전히 분리하기보다, 배우로 개발한 코미디 언어를 직접 통제하기 위해 창작 영역을 넓혀간 과정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본격적인 장편 연출 경력은 1994년 《007 북경특급》에서 이력지와 공동연출을 맡으며 시작됐다. 제임스 본드식 첩보영화를 홍콩식 패러디로 변형한 작품으로, 기존 장르의 익숙한 규칙을 가져와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뒤집는 주성치식 연출의 초기 형태가 잘 드러난다.
1996년에는 《대내밀탐 008》과 《식신》의 공동연출에 참여했다. 특히 《식신》은 성공한 인물이 오만함 때문에 추락한 뒤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구조를 사용하며 이후 주성치 감독 작품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서사적 특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처음부터 완성된 영웅인 경우가 거의 없다. 허풍쟁이, 사기꾼, 실패한 배우, 몰락한 유명인, 사회에서 무시받는 인물들이 굴욕과 실패를 경험한 뒤 자신의 능력과 인간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패배자의 재기’는 감독 주성치의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1999년 《희극지왕》에서는 이력지와 함께 연출하고 각본에도 참여했다. 무명 배우가 성공을 꿈꾸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주성치 자신의 오랜 무명 시절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으며, 과장된 코미디 안에 배우라는 직업의 불안과 좌절을 담아냈다. 그의 감독 경력에서 가장 자전적인 정서가 강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2001년 《소림축구》는 주성치가 감독으로서 완전히 도약한 작품이었다. 소림무술과 축구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결합하고 스포츠영화, 무협영화, 일본 만화 같은 과장된 이미지를 하나의 세계 안에 넣었다.
《소림축구》에서는 배우의 표정과 대사에 의존했던 초기 코미디를 넘어 편집, 와이어 액션, 시각효과, 화면 구성 자체가 개그의 일부가 됐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축구 동작을 만화적인 이미지로 구현하면서 주성치의 코미디가 언어 중심에서 시각 중심으로 크게 확장됐다.
이 작품은 당시 홍콩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거뒀고 제21회 홍콩금상장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배우 주성치의 인기에 의존한 영화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결정적인 작품이었다.
2004년 《쿵푸허슬》은 주성치의 감독 스타일이 가장 완성도 높게 집약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1940년대 상하이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배경으로 갱스터 영화와 고전 무협, 슬랩스틱, 뮤지컬적인 움직임, 만화와 CGI를 자유롭게 결합했다.
《쿵푸허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술과 코미디를 섞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받은 이소룡과 홍콩 무술영화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인 특수효과와 자신의 코미디 감각으로 다시 구성했다. 양소룡, 원화, 원추 등 과거 홍콩 무술영화와 연결된 배우들을 전면에 배치한 것도 이러한 성격을 강화했다.
액션 장면 역시 웃음을 위한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캐릭터와 서사를 전달하는 핵심 장치로 사용된다. 과장된 신체 움직임과 갑작스러운 폭력, 정적인 순간을 빠르게 전환하면서 실사영화를 만화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주성치 감독의 중요한 특징이 됐다.
《쿵푸허슬》은 홍콩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고 금마장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았다. 《소림축구》와 함께 주성치를 단순한 홍콩 코미디 스타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알려진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시킨 작품이다.
2008년 《CJ7: 장강7호》에서는 이전의 거대한 무술 액션에서 벗어나 SF와 가족영화를 결합했다. 가난한 노동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외계 생명체라는 판타지 요소를 더했다. 코미디와 특수효과는 유지하면서도 부성애와 빈곤, 아이의 외로움이라는 감정적인 이야기에 더 많은 비중을 뒀다.
《CJ7》 이후 주성치는 실사영화에서 주연 배우로 나서는 일을 사실상 중단하고 감독과 각본가, 프로듀서 역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후 작품들은 스타 주성치의 연기보다 ‘주성치식 영화’를 다른 배우들을 통해 구현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홍콩영화자료관 역시 그가 《CJ7》 이후 연기보다 연출에 전념했다고 설명한다.
2013년 곽자건과 함께 연출한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이러한 변화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주성치 자신이 출연하지 않으면서도 황당한 코미디와 잔혹한 액션, 로맨스, 비극적인 감정을 결합해 이전 작품과 분명하게 연결되는 스타일을 유지했다.
그가 1990년대 배우로 출연했던 《서유기》 영화들이 손오공과 사랑의 비극을 중심으로 했다면,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삼장법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새롭게 해석했다. 익숙한 중국 고전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현대적인 대중영화로 다시 조립하는 주성치의 장기가 다시 나타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중국 본토에서 거대한 흥행 성공을 거두며 그의 활동 중심이 홍콩에서 훨씬 큰 중국어권 시장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줬다. 이후 주성치의 영화 제작은 중국 본토의 대규모 상업영화 산업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됐다.
2016년 《미인어》에서는 인어 전설과 로맨틱 코미디, 환경 문제를 결합했다. 인간의 개발 사업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는 인어들이 사업가를 암살하려 한다는 황당한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환경 파괴와 인간의 탐욕이라는 주제가 전면에 등장한다.
《미인어》에서도 잔혹할 정도로 과장된 신체 코미디와 순수한 로맨스, 사회적 메시지가 한 영화 안에 공존한다. 일반적인 장르영화라면 충돌할 수 있는 요소를 강제로 연결하면서 오히려 독특한 리듬을 만드는 것이 주성치 연출의 특징이다.
《미인어》는 개봉 당시 중국 본토에서 흥행 기록을 세웠고, 주성치는 홍콩영화평론가협회와 홍콩영화감독조합 등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배우로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그의 이름과 연출 스타일 자체가 대규모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음을 확인시킨 작품이었다.
2019년 《신 희극지왕》에서는 다시 무명 배우의 삶으로 돌아왔다. 1999년 《희극지왕》의 직접적인 속편이라기보다, 성공을 꿈꾸면서 수없이 거절당하는 배우라는 핵심 소재를 새로운 시대와 인물로 다시 해석한 작품이다.
감독 주성치의 코미디는 흔히 ‘모레이타우’라는 말로 설명되지만 그의 후기 연출은 단순한 언어유희보다 훨씬 시각적이다. 인물의 움직임, 갑작스러운 줌과 컷, 과장된 음향, 액션의 속도 변화, CGI와 만화적인 물리법칙까지 모두 웃음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잔혹함과 순수함이 매우 가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이 심하게 얻어맞거나 육체적으로 파괴되는 장면을 슬랩스틱으로 사용하다가도 갑자기 사랑과 가족, 꿈에 대한 매우 진지한 감정으로 전환한다. 이 극단적인 변화가 주성치 영화 특유의 정서를 만든다.
그의 작품에는 고전 홍콩영화에 대한 애정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소룡과 쿵푸영화, 무협소설과 광둥어 코미디, 중국 고전문학의 요소를 가져오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일본 만화와 게임의 이미지까지 자유롭게 섞는다. 특정 장르의 문법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이 성장하며 좋아했던 대중문화를 하나의 영화 안에서 충돌시키는 방식이다.
주성치는 또한 배우를 독특하게 활용하는 감독이다. 전통적인 미남·미녀 스타만을 중심에 놓기보다 강한 얼굴과 몸짓을 가진 조연 배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평범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인물을 영화의 영웅으로 변화시킨다.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에서 특히 이러한 캐스팅 감각이 두드러진다.
감독으로서 그의 경력은 배우 주성치의 스타덤에 가려져 평가되기도 하지만, 《소림축구》와 《쿵푸허슬》 이후에는 연출자로서의 영향력이 더욱 분명해졌다. 홍콩영화자료관에 따르면 《소림축구》는 홍콩 흥행 기록을 세우고 홍콩금상장 감독상을 포함한 주요 상을 받았으며, 《쿵푸허슬》 역시 기록적인 흥행과 금마장 감독상으로 이어졌다.
초기 공동연출 시절부터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의 세계적 성공, 그리고 자신이 출연하지 않는 《서유기: 모험의 시작》과 《미인어》의 대규모 흥행까지 이어진 과정은 주성치가 배우의 유명세에 의존한 감독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코미디 언어를 시각적 연출 체계로 발전시키고 다른 배우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영화 스타일로 만든 것이다.
감독 주성치의 핵심은 결국 ‘웃기는 방법’ 자체를 끊임없이 확장해왔다는 데 있다. 대사와 표정으로 시작한 모레이타우 코미디를 액션과 편집, 음악, 특수효과, 장르 패러디로 넓혔고, 그 안에 실패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성공에 대한 집착, 사랑과 가족,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담아왔다. 배우로서 홍콩 코미디의 시대를 대표했다면, 감독으로서는 그 코미디를 하나의 독자적인 영화적 문법으로 완성한 창작자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