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마이너스 제로》 리뷰: 괴수의 왕이 돌아왔다, 거의 모든 면에서 전작보다 숫자 하나만큼 더 나아진 속편 – 인디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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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마이너스 제로》 리뷰: 괴수의 왕이 돌아왔다, 거의 모든 면에서 전작보다 숫자 하나만큼 더 나아진 속편 – 인디와이어

고지라 마이너스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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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마이너스 제로

Godzilla Minus Zero
감독 야마자키 다카시
출연 카미키 류노스케, 하마베 미나미, 야마다 유키, 사사키 쿠라노스케, 요시오카 히데타카, 안도 사쿠라, 나가사와 마사미, 쿠니무라 준, 다나카 민, 다나카 미오, 마에하라 코우, 이이다 키스케, 아오키 무네타카
장르 SF, 액션, 모험, 드라마, 괴수
개봉일 2026년 11월 3일

각본과 연출을 맡은 야마자키 다카시는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2023년 괴수영화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 왜 그런 엉뚱한 제목을 붙였는지 설명한 적이 있다. 그 제목에는 동등하게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첫째,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혼다 이시로의 오리지널 《고질라》보다 앞선다는 것. 둘째, “전후의 일본은 제로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려 하는데, 고질라가 나타나 상황을 더욱 나쁘고 비극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오스카를 수상한 전작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시에, 1954년 괴수의 왕이 처음 태평양에서 걸어 나온 이후 시리즈 최고의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만들어준 장점들을 더욱 강화한 야마자키의 직속 속편은 천둥처럼 시끄럽고 자주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층 더 우스꽝스러운 제목을 달았다. 바로 《고질라 마이너스 제로》다.

폴 지아마티가 연기한 인물이 자신의 소설 제목을 《어제 다음 날》이라고 밝히는 《사이드웨이》의 장면을 빌려 말하자면, 그건 그냥… 《고질라》 아닌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겉으로만 보면 제목은 분명 황당하다. 하지만 야마자키가 전작에서 사용한 논리를 따른다면, 지구의 핵 시대가 시작된 진원지가 된 이후 힘겹게 구축한 새로운 균형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연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법 설득력 있게 표현한 제목이기도 하다.

괴물이 드문드문 등장하는 또 하나의 20세기 중반 멜로드라마인 《고질라 마이너스 제로》는 전작보다 주제적으로 일관되고 감정적으로도 깊다. 전작의 순진한 풀뿌리 민족주의를 확장하면서 등장인물들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새롭게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전직 가미카제 조종사 시키시마 고이치(카미키 류노스케)와 친구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질문들을 던진다. 슬픔과 성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복수와 평화는? 자기희생과 자기보존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

영화는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혹은 점점 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반복해 묻기 위해 시키시마 일행을 비행 능력을 갖춘 IMAX 크기의 세 머리 달린 개자식과 맞서게 한다. 사람들은 그 괴물을 킹 기도라라고 부르게 된다.

스크린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먹었던 수많은 괴수 가운데 가장 미움받을 만한 존재일지도 모르는 킹 기도라는 왕관을 얻기 전부터 이미 지독한 괴물이다. 추악한 용의 머리를 처음 내미는 곳은 전작의 사건으로부터 2년이 지난 1949년 무렵의 마쓰모토다. 비늘로 뒤덮인 이 세계의 파괴자는 약 2주 전 운석을 타고 일본 산악지대에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임의적인 기원이며, 기도라에게 인간을 향한 좀 더 비극적인 맥락을 부여할 기회를 놓친 설정이다.

전작의 결말에서 고질라가 소멸해 바다 밑바닥에 썩도록 버려졌기 때문에 기도라는 나가노의 언덕에서 귀엽게 낮잠을 자지 않을 때마다 거리낌 없이 시골 지역을 공포에 빠뜨린다.

다행히 일본에는 1947년 고질라를 ‘물리쳤던’ 핵심 인물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이 또 다른 괴수의 공격에 대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있다. 물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여전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인슈타인을 연상시키는 머리의 해군 기술자 노다(다정하면서도 별난 교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요시오카 히데타카)는 대규모 재난대응국의 책임자로 임명됐다. 그곳에는 날씨를 예측하는 비범한 능력으로 기도라와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신입 기상학자 아오야마 마코토(나가사와 마사미)와 냉소적인 생물학자 무라카미 간지(《황혼의 사무라이》의 다나카 민)가 합류한다.

무라카미는 히로시마 원폭과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긴자 습격, 그리고 이번 영화의 시작을 장식하는 마쓰모토 공격에서 모두 살아남았다. 이는 놀라울 만큼 끔찍한 야마구치 쓰토무의 실화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노다가 고통스럽게 얻은 지혜 덕분에 《고질라 마이너스 제로》는 기도라 같은 괴수에게 재래식 무기가 통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을 생략한다.

그런 무지는 일본을 점령한 미국인들의 몫이다. 전작에는 미군이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당시 영화는 전후의 투쟁을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일본 민간인들의 자립심을 향수 어린 시선으로 강조했다. 이번 작품에서 미군은 각진 턱과 권력욕을 지닌 얼간이 부대로 묘사된다. 이들은 일본을 돕는 일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 안에서만 협력한다. 핵 참사의 상처가 없기 때문에 괴수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바라본다.

우리의 친구 시키시마는 정반대다. 그는 다시는 전투기의 조종석에 앉고 싶지 않다. 이제 그는 천사 같은 노리코와 결혼했다. 하마베 미나미가 연기한 노리코는 기적적으로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서 살아남아 새 안대와 몇 가지 큰 비밀을 지니고 돌아왔다. 또한 시키시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귀여운 아키코의 양아버지가 되는 삶을 받아들였다. 전작에 이어 나가타니 사에가 다시 연기한다. 이제 시키시마가 원하는 것은 멋진 갈색 가죽 재킷과 메신저백 차림으로 평화롭게 사는 것뿐이다.

그렇게 간단하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랑하는 두 여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시키시마가 정말로 그렇게 믿을 수만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노다가 세운 기도라 감전사 작전이 관객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하는 데 성공한 만큼 실제 괴수를 죽이는 데에도 효과적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마이너스 제로》에는 장시간 이어지는 괴수 장면이 단 두 번뿐이다. 전작과 비슷한 리듬을 고수하지만, 두 장면 모두 영화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괴수 시퀀스에 속한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가 보여준 위엄에는 약간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규모는 대등하며, 폭력적인 강도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넘어선다.

터무니없이 짜릿한 마쓰모토 상공의 전투는 사토 나오키의 본능적인 음악에 담긴 바그너풍 현악기 선율로 더욱 고양된다. 기발했지만 무게감이 부족했던 《마이너스 원》의 CG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각효과가 장면을 떠받치고, 최고 수준의 IMAX 스펙터클이 관객의 망막에 전투를 새겨 넣는다.

기도라와 고질라의 최종 대결은 회색빛 분위기와 몇몇 생략된 순간 때문에 다소 힘을 잃는다. 그중 하나는 상당히 이상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마지막 난투극이 오래도록 회자될 장면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야마자키는 시리즈 최초의 R등급을 제대로 활용해, 우아하게 안무된 괴수들의 난투에 적자생존의 거친 힘을 불어넣는다.

그렇다. 고질라 영화인 만큼 고질라도 결국 등장한다. 어떻게든 괴수의 왕은 돌아왔다. 팰퍼틴에게 무한히 재생되는 육체가 있었다면 그의 부활 역시 이 정도로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혼다의 오리지널 영화와 야마자키의 전작, 그리고 가렛 에드워즈의 실패한 2014년 리부트 가운데 하나라도 본 팬들은 고질라가 스스로 이야기를 움직이는 주체라기보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자연재해처럼 묘사될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질라 마이너스 제로》 역시 제목의 주인공인 괴수의 출연 시간이 적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질라의 부재는 다시는 안전할 수 없게 된 세계의 핵 그림자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상처 입은 국가를 그린 화려한 최루성 멜로드라마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저주받은 생물학자 무라카미는 복수만이 평화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과거 가미카제 조종사였던 시키시마가 일본을 위해 죽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이제 노리코와 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그는 가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을 두고 갈등한다. 괴물과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가?

《고질라 마이너스 제로》는 일본의 전후 절망을 탐구한 작품 가운데 가장 섬세하거나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그 점에서는 여전히 오리지널 《고질라》가 이 작품 위에 우뚝 서 있다. 《주정뱅이 천사》와 《인간의 조건》, 《오사카의 여인숙》을 비롯한 일본영화사의 수많은 기념비적인 작품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영화가 무라카미에게 부여한 분노는 그 자체로 도발적이며, 시키시마를 위해 마련한 여정은 그가 전작에서 비틀거리며 지나왔던 길보다 훨씬 섬세하고 충분한 설득력을 갖춘다.

이번 고질라 영화의 결말에서도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작품 자체도 3부작의 중간 장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마이너스 제로》는 시리즈의 숫자가 하나씩 더해지기 시작한 이유를 만족스럽게 이해시킨다.

평점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