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페이스
제임스 왓킨스가 연출한 피투성이의 끈적끈적한 R등급 보디 호러는 갈수록 종잡을 수 없어지는 DCU에 색다른 작품 하나를 추가한다. 하지만 반드시 봐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기묘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에 가깝다.
제임스 건과 피터 사프란의 DCU는 새로운 챕터 ‘신들과 괴물들’을 시작한 뒤 세 번째 영화에 도달했다. 적어도 흥미로운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아니, 최소한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선택’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새로운 코믹북 영화 세계의 출발점으로 《슈퍼맨》을 선택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현명했다. 슈퍼맨은 누구나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후속작 《슈퍼걸》은 관객의 반응이 갈릴 운명이었다. 이 평론가는 상당히 좋아했지만,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일부 열성 관객들이 싫어할 만한 다른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클레이페이스》가 등장했다. 다른 제작진과 영화인들이었다면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재정비하는 첫 세 편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 음울하고 역겨운 안티히어로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임스 왓킨스가 선보이는 끈적하고 잔혹하며 노골적인 R등급 보디 호러는 그러한 야심과 비전에 걸맞은 성과를 거두는가? 그다지 그렇지는 않다. 열린 마음을 가진 관객이라면 영화가 감행하는 과감한 시도에 감탄할 수도 있다. 분명 기존의 코믹북 영화와는 다르며, 똑같은 공식에 질릴 대로 질린 팬들에게 잠시 숨을 돌릴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러한 맥락을 떼어놓고 보면 왓킨스의 영화는 관객을 매료시키기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클레이페이스에 관한 사전 지식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 마이크 플래너건과 호세인 아미니가 쓴 각본은 필요한 기본 설정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물론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그 각본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다만 클레이페이스가 전통적으로 배트맨의 적으로 그려져 왔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조금은 도움이 된다.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그가 왜 새로운 DCU의 초창기 작품에 선택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배트맨과 관련된 암시를 넣고, 고담시를 소개하며, 그곳의 어두운 이면을 건드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래너건과 아미니는 클레이페이스의 초기 설정 가운데 또 다른 요소도 가져온다. 바로 그가 배우라는 사실이다. 끔찍한 얼굴의 상처를 한층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꽤 영리한 설정이다. 톰 리스 해리스가 연기한 맷 헤이건은 고담시 출신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이제 막 스타덤에 오르려는 배우다. 해리스는 두꺼운 특수분장과 시각효과 아래에서도 인물의 진실한 비애를 훌륭하게 전달한다.
우리가 맷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주요 시상식 후보에 오르기 직전이다. 화면에는 어떤 상인지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지만, 나중에 누군가는 그것을 아카데미상이라고 부른다. 맷은 매력적인 차기작 제안을 연이어 받고 있으며, 성공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절친한 친구 코리(조슈아 제임스)가 그를 도와주고, 맷 자신도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자주 떠올린다.
모든 정황을 보면 맷은 좋은 사람이다. 전용기에서 예쁜 승무원에게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에이전트에게도 다정하며, 고담의 집으로 돌아가 자신처럼 떠오르는 젊은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맷에게는 영화가 끝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아름다운 여성의 유혹과 클럽에서의 하룻밤에 지나치게 쉽게 휩쓸린다는 것이다.
매혹적인 젊은 여성 미아(조아나 리베이로)가 댄스플로어 건너편에서 맷에게 눈길을 보내자 그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녀가 배우 지망생이라고 말하는데도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달아났어야 했다. 다행히 코리가 미아는 지역 범죄 조직의 보스 마르코스 사보(다비드 덴시크)의 여자친구라고 경고하지만, 안타깝게도 맷은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고담시다. 언제나 축축하고 지저분하며 낙서로 뒤덮여 있다. 다음 날 아침 맷과 미아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마르코스와 딕 트레이시의 악당들을 살짝 연상시키는 부하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분노한 마르코스는 자신의 유독한 남성성을 맷의 잘생긴 얼굴에 쏟아낸다. 그는 맷의 얼굴을 난도질한 뒤 그 상태로 내버려둔다. 코리가 이미 미아에게 남자친구가 있다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마르코스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의문이다.

맷이 입은 상처는 역겹고 끈적거리며 잔혹하고 피투성이다. 말 그대로 살점이 드러난다. 왓킨스는 그의 신체적 고통을 조금도 외면하지 않으며, 보디 호러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 집념만큼은 감탄할 만하다.
배우인 맷에게 얼굴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안면 훼손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 하지만 이후 벌어지는 일은 어쩌면 그보다 더 나쁘다. 고담시에서 정의를 찾을 수 있다고 믿은 맷은 마르코스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선다. 그 결과 돌아오는 것은 인격 살인과 끔찍한 수술, 재산 착취, 그리고 자신이 알던 삶의 완전한 붕괴다.
그렇기에 맷은 케이틀린 코 박사(나오미 애키)를 만났을 때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케이틀린은 절개하고 자르고 ‘나노세포’를 실험하는 일을 몹시 좋아한다. 유감스럽게도 진흙은 아니다. 맷은 이 나노세포가 자신의 얼굴을 되돌려줄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소식은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한동안은 그렇다. 자신의 얼굴을 되찾아 예전 삶으로 돌아가려는 집착에 사로잡힌 맷은 나노세포를 과다 투여하고, 곧 비유적으로나 문자 그대로 괴물이 된다. 우리가 알던 다정한 젊은 배우는 사라지고, 으르렁거리며 복수에 집착하는 괴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맷은 자신의 얼굴을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사람으로, 원하는 순간에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두려워하지만 곧 그 능력을 즐기기 시작한다. 케이틀린이 맷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부차적인 설정은 불쾌한 로맨스 요소를 억지로 추가하기 위해 끼워 넣은 것처럼 느껴진다.
갈수록 탁해지는 시각효과와 이야기 전개는 맷의 변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영화가 훨씬 영리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은 그가 단순히 여러 얼굴 사이를 오갈 때다. 문 뒤로 재빨리 사라졌다가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나오는 장면들이 특히 좋다.
그러나 변신의 원리는 명확하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누군가로 변하려면 그 사람을 머릿속으로 떠올려야 하는가? 아니면 직접 만져야 하는가? 옷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옷도 피부의 일부인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나마 이런 장면 덕분에 에디 마산과 조슈아 제임스를 비롯한 조연 배우들이 맷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제법 즐거운 연기를 펼칠 수 있다.
살점이 넘치는 몇몇 대형 장면도 영화에 힘을 보탠다. 비행기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실제로 속이 뒤집힐 만큼 끔찍하다. 난기류와 나노세포는 정말 최악의 조합이다. 복수심에 이끌려 다시 클럽을 찾아가는 3막의 장면도 톰 리스 해리스에게 마음껏 날뛸 기회를 준다. 맷의 주요 적들 가운데 일부는 말 그대로 그의 먹잇감이 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작품의 불균형은 더욱 크고 피범벅이 된다. 이야기의 구성과 인물들의 동기, 영화가 무엇을 하려는지에 관한 혼란이 점점 심해진다.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유연한 소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야심 찬 실패작은 끝내 하나의 형태나 최종적인 모습, 혹은 하나의 훌륭한 아이디어로 굳어지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