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리뷰: 장르를 비틀어낸 나홍진의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영화
로저 이버트 로저 이버트

‘호프’ 리뷰: 장르를 비틀어낸 나홍진의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영화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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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Hope
감독 나홍진
출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벤더,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장르 SF, 미스터리, 스릴러
개봉일 2026년 09월 9일

나홍진 감독의 혼란스러우면서도 떠들썩하게 재미있는 액션 영화 《호프》에서 한국의 작은 시골 광산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괴물의 모습이 제대로 등장하기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그전까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파괴의 소용돌이다. 경찰서장 범석(황정민)은 사냥꾼인 사촌 성기(조인성)에게서 도로 한가운데 끔찍하게 훼손된 황소 한 마리가 죽어 있다는 전화를 받는다. 파리떼가 들끓고 몸에는 깊고 피투성이인 상처가 남아 있지만, 무엇이 소를 죽였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범석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오자 좁은 길에는 목이 잘린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고 건물 곳곳에는 무언가가 뚫고 지나간 듯한 구멍이 나 있다. 이 미스터리의 답을 알게 되기 전까지 마치 영화 한 편을 통째로 본 것 같은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그 한 시간 동안 펼쳐지는 미스터리는 그 자체로 대단한 영화적 성취다. 너무나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에 대한 관객의 판단마저 손쉽게 뒤집어버린다.

나홍진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호프》에 대해 쉽게 무엇인가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곡성》은 의도적으로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훨씬 더 예측 불가능한 무언가로 재구성했다. 이 영화의 재치 역시 비슷한 즉흥성을 가지고 있다. 나홍진이 너무 뻔한 직선 코스로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언제 방향을 틀지 몰라 관객을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 피와 속도감으로 가득한 이 모험은 관객에게 안겨주는 불안감을 즐긴다. 처음에는 고전적인 영웅 서부극처럼 관객을 안심시키다가 어느 순간 놀라운 크리처 영화로 변신한다. 《프레데터》와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은 SF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 자신의 도덕적 기준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호프》가 실제로 어떤 영화인지, 혹은 누가 등장하는지조차 일부러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정확히 그렇다. 이 독창적인 장르 영화를 볼 생각이라면 가능한 한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편이 좋다. 그래서 이 리뷰에서는 나홍진이 만들어낸 세계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가장 명백한 이야기부터 하자. 《호프》의 첫 한 시간은 끝내준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하나는 범석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괴물을 추적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범석의 사촌과 사냥꾼 친구들이 답을 찾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다. 영화 후반부는 두 번째 이야기에 더 가까워지지만, 첫 번째 이야기는 거의 전적으로 범석과 영화의 역동적인 사운드 디자인이 이끌어간다. 범석은 언제나 괴물보다 몇 발짝 늦다. 괴물이 남긴 총소리와 폭발음, 비명은 들을 수 있지만 좀처럼 따라잡지는 못한다. 그 결과 이어지는 트래킹 숏들은 범석과 관객을 완전히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한다. 그중 몇몇 장면은 너무나 매끄러워 나홍진과 촬영감독 홍경표가 대체 어떻게 촬영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그리고 범석이 마침내 괴물을 목격하는 순간, 그 정체의 공개와 이후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장난기 넘치던 영화에 갑작스럽고 날카로운 긴장감을 더한다.

화면에서는 엄청난 파괴가 벌어지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의외로 많지 않다. 동료 경찰 성애(호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야전 의료 훈련까지 받은 인물로, 침착한 범석의 부관 역할을 하면서 여러 흥미진진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탐욕스러운 사냥꾼과 나이 든 채집꾼은 괴물에 관한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하고, 시장의 조카로 보이는 또 다른 경찰도 잠시 등장한다. 사실상 그게 전부다. 이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웃음을 만들어낸다. 한국 액션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화적인 캐릭터들과, 자신의 땅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압도적인 침입자에게 맞서는 서부극식 영웅주의가 흥미롭게 결합된다. 심지어 클라이맥스에 가서야 제대로 등장하는 얼빠진 조력자 강아지까지 있다. 그리고 이 괴물들의 정체에 관한 반전은 관객이 처음 품었던 유혈과 복수에 대한 욕망마저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호프》의 첫 한 시간이 지난 뒤 펼쳐지는 모든 것은 관객에게 꽤 흥미로운 스트레스 테스트가 된다. 추격전은 여전히 많고, 그중 일부는 지나치게 길게 이어지며, 영화의 시점 역시 다른 인물들로 이동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3분의 2는 이상할 정도로 추진력을 잃는다. 왜일까? 첫 한 시간이 워낙 재미있고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이후 수많은 액션 장면에서 새로운 정보가 나오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홍진은 영화의 두 주요 부분 사이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배우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찍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은 의도적으로 충분히 쓰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것을 결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의도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인간들 가운데 특별히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첫 한 시간 동안 나홍진은 범석이 선글라스를 끼고 사건을 조사하러 등장할 때처럼 그를 영웅적으로 찍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 그런 숏은 사라진다. 카메라는 이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범석을 상황에 압도당한 바보처럼 바라본다. 그는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생명체를 향해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 최소한의 연민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기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농담의 대상이 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인물들은 비극적일 정도로 인간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탐욕스럽고, 근시안적이며, 용서할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괴물’에 대해서는 답답할 정도로 적은 정보만 얻게 된다. 나홍진이 서부극의 영웅을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이라면 이 영화에서 정확히 그렇게 해낸다. 마지막에 이르면 그의 카메라는 황량하고 종말적인 도로의 빈 공간을 이용해, 주변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인간들을 지극히 작은 존재로 담아낸다.

《호프》에서 가장 영리한 부분은 테일러 러셀,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벤더를 너무 적게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세 사람 모두 생명체를 연기하는데, 화면 속 모습은 아직 마르지 않은 CGI 페인트를 덧칠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 칸 경쟁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완성한 현재 버전에서 정식 개봉으로 넘어갈 때는 이런 문제들이 수정될 것으로 생각한다. 세 배우의 대사도 극히 적다.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의 마지막 10분이 될 때까지 감춰져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영화의 결말이라기보다는 속편을 위한 설정처럼 느껴진다.

나홍진은 정말 의도적으로 속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비슷한 계산을 하는 다른 SF 영화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이 장르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못마땅해하는 것일까? 나홍진은 매 순간 장르의 관습을 비틀면서도 관객이 그 농담을 따라잡을 시간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호프》는 대담하고 도발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연출로 만들어진 영화다. 숨이 멎을 만큼 뛰어난 영화적 기량을 보여주는 순간과 풍자적인 인물 묘사 사이를 오가며, 그 능청스러운 연출은 텅 빈 액션 영웅들을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관객 자신에게 거울을 들이댄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미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평점 3.5/4